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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로 먹으려 하면, 무엇이든 탈이 난다

by 정지우

내가 가지고 있는 믿음 하나는 '날로 먹으려 하면, 무엇이든 탈이 난다'라는 것이다. 살아가다 보면, 마치 하늘이 주신 것 같은 기회들처럼 보이는 것들을 만나기 마련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반대급부 없는 행운, 그러니까, 내가 줄 것이나 잃을 것 없는 행운 같은 건 없다고 믿는다. 세상이 주는 환상적인 원피스 같은 행운이 있다고 하여, 그것을 덥썩 날로 먹으려 하면, 거의 반드시 탈이 난다고 믿고 있다.


그보다는 차라리 나에게 어떤 기회가 왔을 때, 내가 진짜 상대방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지'를 따지는 것이 훨씬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더라도, 객관적으로 상대방에게 무언가 진짜 줄 것을 가지고 있다면, 오히려 그것이 더 진정한 기회일 수 있다. 그런데 나는 상대에게 별로 줄 것도 없이, 내게만 좋은 기회인 것처럼 보인다면, 그것은 피해야 할 유혹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달리 말하면, 사람은 자기 분수를 알아야 한다.


나는 주변 사람들이 터무니 없을 정도로 좋은 기회를 얻게 되면, 대체로 축하해주기는 하지만, 반대로 내게 터무니 없이 좋은 기회가 오는 것 같으면, 최선을 다해 의심한다. 차라리 나는 내가 더 줄 게 있는 관계를 찾는다. 가령, 110을 주고 90정도를 받을 수 있으면 좋다. 그런데 나는 60밖에 못 주는데 120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으면, 문제를 직감한다. 그것은 나의 분수에 맞는 기회가 아니라, 나의 허영심이 이끄는 길일 뿐이다.


이것은 사회에서의 일이나 기회와도 관련이 있지만, 개인적인 관계도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심지어 결혼도 날로 먹으려 하면, 반드시 탈이 난다고 믿는다. 상대가 내게 희생하고 주는 만큼, 나도 상대에게 희생하고 줄 게 있어야 한다. 상대가 요리의 신이라면, 나는 청소의 신이 되어주어야 한다. 내가 약간 손해 보는 느낌이 있어야지, 너무 과분하게 느껴지면 안된다. 과분하다면, 내가 줄 것은 없는지 필사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퇴사를 한 뒤로, 굵직한 제안을 받은 것만 대여섯 건이 되는데, 개인적으로는 재수 좋다고 생각하며 모든 행운을 덥썩 물기 보다는, 나의 분수에 맞는 일인지, 내가 감당 가능한 일인지를 최대한 신중하게 고민을 했다. 매번의 결론은, 내가 타인들에게 의존하여 무언가를 기대하기 보다는, 일단 내 길을 충분히 뚜벅뚜벅 걸어가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무언가를 얻어 먹기 보다는, 스스로 넘쳐 흐르듯 무언가를 줄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해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직 그리 긴 인생을 살진 않았지만, 지금까지 내가 찾아온 길은 그런 것에 가까웠다. 나에게 너무 좋은 기회를 찾아 다니기 보다는, 내가 그 누군가에게 너무 좋은 것을 줄 수 있는지를 고민했다. 내가 과연 그런 걸 줄 수 있는 사람인지, 그런 사람으로 되는 길로 가고 있는지, 이 길은 나를 그런 길로 이끌 것인지를 늘 고민했다. 지금까지 대체로 그런 길은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앞으로 10년쯤 지나서, 다시 내 삶의 방식을 스스로 평가해볼 일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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