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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우 Mar 01. 2024

나는 믿음을 먹고 자랐다

나는 믿음을 먹고 자랐다. 부모님은 언제나 날 믿어주었다. 주변에 보면, 자식들을 매우 엄하게 키우거나 하나부터 열까지 간섭하면서 자기 뜻대로 하려는 부모들도 많았다. 그러나 나의 부모님은 나에게 거의 모든 걸 맡겨두었다. 하고 싶은 걸 하게 했고, 그럼에도 내가 공부도 성실히 잘하고, 엇나가지 않은 채 바른 사람으로 클 거라고 그냥 믿어주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어떤 걸 하라거나 하지 말라고 윽박지른다든지, 의심당하거나 추궁당하는 것보다 그렇게 그냥 '믿음'을 받았던 게 가장 강한 힘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부모님은 내가 그냥 바르게 자랄 거라고 철썩같이 믿고 있었기에, 나는 그 믿음을 저버릴 수 없었다. 부모님이 나를 좋은 사람으로 클 거라 믿었기에, 나도 최선을 다해 그러고 싶었다.


그래서 나도 어떤 시절에는 공부 같은 것보다는, 매일 새벽까지 게임을 하고, 판타지 소설을 읽고 쓰는 거에 심취했던 때도 있었다. 그렇지만, 너무 늦지 않게 부모님의 '기대와 믿음'으로 돌아오고 싶기도 했다. 특히, 고등학교 들어가면서는 게임을 완전히 끊어버렸는데, 그때부터는 그 믿음에 부합하는 존재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믿어주면, 그 믿음을 저버리고 싶지가 않아진다.


처음 작가가 되고 싶다고 했을 때, 부모님은 나라면 당연히 훌륭한 작가가 될 거라고 믿는다고 말해주었다. 내가 자퇴하고 싶다고 했을 때도, 그것도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그러나 그럴 때도, 다른 직업을 가진 채 글을 쓸 수도 있다는 점이나, 학교를 졸업하면 좋은 점에 대해서도 아주 상세하게 이야기해주었던 기억이 난다. 결국 돌아보면, 삶 전체가 내 나름의 고집을 밀고 나가다가도, 부모님의 믿음의 범주 안으로 돌아오는, 그런 삶을 살게 되었다고 느낀다.


때론 꽤나 제멋대로 살았고, 원하는 것들을 추구하며 밀고나가보기도 했지만, 나는 내가 받은 그 깊은 믿음을 받아들이며, 결국 나의 욕망과 내가 받은 믿음을 섞어 나름의 삶으로 만들어왔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너를 믿는다. 너라면 잘할 거라 믿는다. 네가 나쁜 길에 들어설 거라 믿진 않는다. 네가 원한다면 그 길을 잘 걸어갈 수 있을 거다. 나는 네가 좋은 아들인 걸 알고 있단다. 그런 믿음이 내 안에는 가득하고, 나는 그런 믿음을 먹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가끔 내 안에는 먹어도 먹어도 줄지 않는 무한한 치즈 덩어리 같은 게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때로는 그 치즈 덩어리의 존재를 잊을 때도 있고, 그만큼 불안해질 때도 있다. 그렇지만, 역시 내게는 내가 받은 믿음이 있고, 그 믿음의 존재를 알고 있으며, 그렇게 받은 믿음을 타인에게 주면서 살아가기도 한다. 문득, 중학생 때였나 친구들 사이에서 자기의 '싸인'을 만드는 게 유행했던 기억이 난다. 그 때 나는, 무엇을 알고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어쩐지 가장 멋진 단어는 '신뢰'가 아닌가 생각하여, 'TRUST'라는 싸인을 만들었다. 어쩐지 그 단어가 모든 단어 중 가장 근사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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