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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우 Mar 13. 2024

누군가 나에게 소중해지려면 시간을 써야한다

누군가를 나에게 소중한 사람으로 만들려면, 그에게 시간을 써야 한다. 이는 익히 수많은 사람들의 절절한 공감을 얻은 '어린 왕자와 여우'의 이야기에서부터, 털 손질하는 시간으로 친밀감을 높이는 영장류의 본능, 최근의 우정에 관한 심리학 연구에 이르기까지 거의 의심의 여지 없는 사실이다. 시간을 쓰지 않으면, 누구도 내게 소중한 사람이 될 수 없다.


문제는 우리가 누군가에게 시간을 쓰려면, 너무 많은 의지가 필요하게 됐다는 점이다. 그 누군가를 나에게 소중한 사람으로 만들고자 하기 위해서는, 보고 싶은 넷플릭스 시리즈와 매일 업데이트 되는 유트브와 거의 생화학적 시스템으로 나를 끌어당기는 쇼츠와 릴스를 넘어서 그를 만나러 가야 한다. 밀린 시리즈를 정주행하고 누워서 보내야 할 주말을 뒤로한 채, 그 누군가를 만나러 떠나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누구도 우리에게 소중한 사람이 되지 못한다. 어플로 100명의 소개팅 상대를 골라내어 만나 보더라도, 그들이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 되긴 어렵다. 누가 되었든, 그와 적어도 몇 십 시간쯤은 함께 보내야, 그가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 될 여지라도 생긴다. 한 연구는 그냥 아는 사람에서 '가벼운 친구'라도 되려면 45시간 정도는 함께 보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유의미한 친구가 되려면 100시간쯤은 함께 보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좀처럼 우리는 '소중한 사람'을 갖지 못한다.


여기에서 핵심은 그 누군가가 나를 소중하게 생각하느냐 하는 게 아니다. 즉, 내가 그 누군가에게 소중할 만큼 매력 있거나, 좋은 사람이거나, 권력 같은 게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그가 누구든 그 사람이 '나에게' 소중해질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다. 그가 나를 소중하게 생각할지는 오히려 두 번째 문제다. 그 이전에, 내가 그를 소중히 여길 수 있느냐는 것이다. 내가 그 누군가를 소중히 여길 수 있으려면 시간을 쓰는 방법 밖에는 없다.


그러나 우리가 한 겨울 수분이 메말라가는 나뭇가지처럼 잃고 있는 건, 바로 그 누군가를 소중히 여길 수 있는 능력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 누군가에게 충분한 시간을 써서 그를 소중히 여길 수 있는 능력을 점점 잃고 있을지 모른다. 마치 온 사회와 문화가 그것을 적극적으로 막고 있는 것처럼도 보인다. 타인에게 시간을 쓸 시간에 자기계발을 하라, 코인 투자를 하라, 평생 다 봐도 볼 수 없는 온갖 영상들에 빠져라, 그렇게 말이다.


나는 이것이 매우 의식적으로 접근해야 할 문제라고 느끼곤 한다. 자연스럽게 그냥 살면, 나는 타인을 소중히 여길 수 있는 가능성에 스스로 닫혀버릴 수 있다고 느낀다. 그냥 돈 벌고, 소비하고, 누워서 먹는 당분과 누워서 보는 콘텐츠에 중독되고, '서로를 소중히 여길 수 있는 인간의 세계'로부터 차단된다. 그러나 어쩌면 인간은 그러라고 태어난 것이 아닐 것이다. 서로 사랑하고, 유대 관계를 맺고, 지지하고, 의존하며, 서로에게 절절해지라고 태어난 쪽에 가까울 것이다.


내가 시간을 쓰고 싶은 사람들에게 시간을 쓰기, 라는 일에 결단이 필요하다. 애써 그를 만나러 가야한다. 폭풍을 뚫고 골짜기를 넘듯이, 그를 찾아 떠나야 한다. 그를 만나 악수를 하고, 포옹을 하고, 어깨를 두들기고, 만나서 반갑다며 웃고 이야기에 빠져들어야 한다. 늦기 전에 연락하고, 찾아가자. 누군가는 나이가 들면, 친구 같은 건 필요 없다는 걸 알게 된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오히려 나이가 들고 나면, 남는 건 사랑과 우정 뿐일 수도 있다. 다른 것들이 오히려 허상에 가까웠다는 걸 느끼는 순간이 올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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