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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우 Feb 12. 2024

삶의 여정을 사랑해야 한다

Unsplash의Mohamed Nohassi


아내와 하이볼 한 잔을 하다가, 나는 "역시 지금 삶을 사랑해야겠어."라고 말했다. 삶이 어딘가에 도착해서 누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면, 인간은 불행하게 죽을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결국 삶을 사랑할 방법은 그 여정을 사랑하는 것밖에는 없다. 어디에 도착하든, 삶에는 다음 목적지가 주어지기 마련이다. 




내가 이것을 가장 절실히 깨달은 건 로스쿨 생활을 지나면서였다. 대개 수험생활이란,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의 행복을 포기하는 것으로 정의된다. 그러나 나는 그럴 수 없었다. 내게는 수험생활이 곧 인생의 유일한 신혼생활이었고, 또 인생에서 유일하게 아이의 유년기를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랬기에, 나는 목적지까지 행복을, 사랑을 마냥 유예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나의 필사의 사랑을 건 수험생활이 시작되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남들만큼 공부를 하면서도 후회없이 사랑해야 했다. 주말의 바닷가로 달려가서, 아이랑 틈틈이 놀아주면서 모래사장에 수험서 한 권을 들고 주저앉아 공부를 했다. 한 손으로는 장난감 삽으로 땅을 파주면서, 한 손으로는 책을 들고 공부를 했다. 그러다가, 그런 상태가 미안해지면 한바탕 아이랑 놀아주고 다시 책을 꺼내 들었다. 책은 바닷물에 젖어 쭈글쭈글해졌다.




아이의 목욕은 항상 내가 시켰다. 목욕 시간이 소중했던 건, 아이를 홀딱 벗겨놓고 욕조에 담가서 거품 놀이를 하며 노는 시간에 아이가 너무도 사랑스러웠고, 또 아이가 가장 즐거워하는 시간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시간을 위해 내가 암기해야 할 내용들을 모조리 녹음해두었다. 아이 목욕을 시키면서, 귀에는 이어폰을 꽂고 법조문과 판례를 암기했다. 나는 두 마리 토끼를 반드시 잡아야 했다. 




그밖에도 곡예를 부리듯 공부하며 육아하고 신혼 생활을 보냈던 나날들은 셀 수 없이 많았다. 아내와 아이를 차에 태우고 어딘가로 여행가거나 나들이 가는 때도, 언제나 내게는 귀로 공부하는 시간이었다. 어떤 호텔에 가든 문제집이나 암기장을 놓고 간 적이 없었다. 그렇지만, 언젠가 공부가 끝나고 좋은 상황에 가서야 사랑을 하겠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 때가 되면, 늦어버리고 후회할 걸 알았다. 그래서 내 젊은 날의 정신력과 체력은 공부와 사랑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데 썼다. 




그런 걸 처음부터 잘할 수는 없었다. 당연히 로스쿨 첫 학년에는 성적이 엉망이었다. 나에게는 공부에 특출난 재능 같은 건 없었다. 그러나 그 필사의 애씀이 이상하게도 내게 가장 알맞는 어떤 길을 열어주었다. 더 절박하게 공부해서인지, 그런 상황에 결국 적응하며 성적은 많이 올랐다. 바닥에서 거의 정상까지 올라갔다. 공부와 시험이 모두 끝난 다음 날, 기숙사를 정리하면서 나는 혼자 오전 내내 펑펑 울었다. 




그 시절은 힘들었지만, 내게 삶을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알려주었다. 초조해하고 불안해하면서 어느 하나의 걱정에 몰두하고 사로잡히기 보다는, 그 초조하고 불안한 여정을 사랑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초조와 불안에 잡아먹히면 지는 것이고, 하나의 목표 달성에 목을 매고 다른 것들을 내팽개쳐도 지는 것이라는 걸 알려주었다. 여정에서 사랑하지 못하면, 삶은 사랑하지 못한 채 끝이 난다. 




삶이 끝나는 날까지, 인간 삶은 여정 속에 있을 수밖에 없다. 목표는 끝없이 도래하기 마련이고, 결국 그 과정에서 사랑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일단 사랑해야 한다. 오늘을 즐기고, 오늘의 삶을 사랑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삶은 이미 너무 많이 지나가 있을 것이다. 안심하고 모든 걸 누릴 수 있는 목표의 대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없다. 삶은 언제나 그곳으로 향하는 여정이고, 그 여정을 사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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