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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우 Apr 06. 2024

애씀을 비웃는 사람들

개인적으로 나는 무언가를 잘하고자 애쓰는 사람을 비웃는 만큼 한심한 일이 없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무엇이든 처음부터 잘할 수는 없다. 처음부터 유명하거나 성공하거나 완벽할 수도 없다. 우리가 아는 무언가 잘하는 사람, 근사해보이는 사람, 마치 태어날 때부터 '멋진 사람'의 운명을 부여받고 타고난 것 같은 사람에게도, 어설프고 진흙탕을 뒹구는 것 같이 전전긍긍하는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한심한 사람들은 다른 누군가가 전전긍긍하며 애쓰는 걸 비웃고 싶어한다. 왜냐하면 스스로는 그럴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실패하는 게 겁나고, 누군가 비웃을까봐 자신은 애초에 그런 '애씀'으로 들어갈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대신 그는 한 걸음 물러나 '애초부터 잘될 사람'과 '애써도 안될 사람'을 신처럼 나누며 구경하고 비웃고 품평하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실제로 세상을 움직이는 것, 삶다운 삶을 사는 것, 세상에 의미있는 발걸음을 옮기는 것은 구경꾼이 아니라 플레이어의 몫이다.


나는 운 좋게도 자기 분야에서의 상당한 명망을 이룬 사람들을 가까이에서 보거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일들이 제법 있었다. 가령, 어느 분야에서 지금은 그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는 한 사람이 있는데, 사람들은 그가 갑자기 완성되어 어느 날 세상에 등장한 존재처럼 여긴다. 그러나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는데, 그가 아무도 모르는 동안 그 분야에서 15년 동안 맨땅에서부터 엄청나게 애써왔다는 것이었다. 그 동안 그도 용쓰네, 네까짓 게 그런다고 되겠냐, 같은 시선을 끊임없이 받았다. 땅 짚고 헤엄치듯이, 때론 가족 같은 가까운 사람들의 체념 섞인 눈빛까지 받아가며 '발악한' 끝에 일종의 이상을 이룬 것이었다.


오만한 구경꾼들은 인간의 불완전한 애씀을 신뢰하기 보다는 특정한 인간에게만 완벽한 천재성이나 타고난 재능, 태생적으로 정해진 자연스러운 빛남이 있고, 자신은 그것에 대한 안목이 있다고 스스로 믿는다. 우리 시대에 이런 태도는 무척 흔해지기도 했는데, 인생이란 무엇이든 타고난 것에 의해 결정된다는 냉소주의가 광범위하게 유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것은 무엇이든 귀찮게 여기면서 편의적으로 소비하는 게 중독되어가는 소비형 인간의 태도와도 직결된다. 악착같이 노력하며 생산하는 태도 자체를 싫어하게 되면서, 그것 자체를 평가절하하거나 추하게 여기고 '없는 취급'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확신하는, 내가 알고 있는 진실은 이런 쪽에 가깝다. 천재적인 재능을 타고나 너무나 아름다워 보이는 어떤 존재도, 사실은, 너무도 그렇게 되고 싶어서 지리멸렬할 정도로 추한 시절 속에서 자기를 갈아넣으며 애써온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가장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으로 도도함을 자랑하는 미녀나 미남도, 얼굴에 난 잡티 하나하나에 강박적으로 신경쓰며 관리하고, 수많은 시술과 표정 연습을 거쳐 그렇게 보이게 되었다는 점이다. 태어날 때부터 여왕이었을 것 같은 피겨 스케이팅 선수도, 똑같이 지지리 궁상맞은 나날들을 거치고 거쳐, 간신히 그 빛나는 순간에 도달한 것이다.


삶에서 거리를 둬야하는 사람 중 맨 앞줄에 있는 사람은, 애씀을 무서워하면서도 비웃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 곁에 있다 보면, 결국 잃는 건 삶이다. 왜냐하면 삶이란 본디 구경하는 게 아니라, 플레이하고, 실천하며 살아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가장 살아있을 때는, 누가 보는지도 모른 채 사랑하는 사람과 뒤엉켜 깔깔대고 웃으며 자유롭게 춤추고 추하게 노래 부를 때다. 남들이 볼 때는 어리석게 짝이 없고 한심해 보이는 것과 상관 없이,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일에 젖먹던 힘까지 애쓰며 몰입하고 있을 때다.


애쓰는 사람들은 결국 어떤 식으로든 삶을 자기 것으로 만든다. 그리고 자기의 삶을 타인들의 시선에 난도질 당하게 두지 않고, 자기의 파도로 만든다. 자기만의 텐션을 끌어올리고, 자신의 에너지로 삶을 이끌고가며, 자기의 삶을 살아낸다. 이런 건 구경꾼으로 머물러서는 흉내도 내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게 어느 날, 밝은 햇살 아래 가장 추한 것은 진흙탕을 뒹굴며 나아가던, 애쓰며 발악하던 그가 아니라, 담벼락 아래 낄낄대며 줄지어 앉아있던 구경꾼들이라는 것은 너무나 쉽게 밝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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