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지우 Apr 28. 2024

습관적으로 행복을 연습해야 한다

습관적으로 행복을 연습해야 한다. 아이랑 세상을 거닐다 보면, 대략 두 종류의 나이 든 분들을 만나게 된다. 어떤 분들은 아이의 사소한 몸짓만 보고도 웃어주며 눈을 맞춰준다. 반면, 어떤 분들은 아무리 아이가 재롱을 떨고 있어도 무표정 또는 찌푸린 표정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나는 둘 중 너무도 자연스럽게, 전자의 삶을 닮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다. 습관적인 행복을 누릴 줄 아는 사람, 별 것 아닌 것에 웃고, 그래서 그 미소가 얼굴에 정착된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행복은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연습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성취로 얻는 행복의 느낌은 너무 일시적이고, 결국에는 더 큰 성취를 갈구하는 '결핍'의 상태가 되어버린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삶에서 높은 성취를 얻은 사람 중에는 '습관적으로 행복'한 사람보다는 습관적으로 우울한 사람이 더 많아 보일 때도 있다. 그보다 행복은 일상의 연습에 가까운 것이다. 오늘의 조건에서 행복할 방법을 모르면, 내일의 조건에서 행복하긴 더 어렵다.


얼마 전, 다녀온 여행은 내 삶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들을 선물해주었다. 그 행복이 어디에서 왔나 생각해보다가, '마음의 벽'을 넘어는 순간들에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냥 길가에 있던 낯선 쌀국수집을 지나치고 평소처럼 편의점 김밥으로 점심을 떼우고 강연에 갈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 대신, 나는 작은 모험을 하기로 했다. 맛도, 경험도, 기분도 장담할 수 없었지만, 그냥 나무 숲 사이에 자리잡고 햇빛을 받는 그 쌀국수집이 너무 예뻐서, 가보기로 했다. 행복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이 여행은 총체적으로 '마음의 벽' 넘기 실험의 장이었다. 첫날 저녁을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과 먹기 시작한 것을 시작으로, 다음 날 점심도 실제로 처음 만나는 사람과 함께했다. 이 여행에서 절정은 아이와 바다에 뛰어든 것이었다. 아직 봄이었고, 다른 관광객들은 사진만 찍을 뿐 아무도 '바다'에 들어간다는 생각은 안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까짓것 뭐 어때, 즐거우면 그만이지, 라는 마음으로, 아이랑 그냥 바다에 뛰어들었고, 우리 삶에서 가장 아름다운 봄바다를 만난 순간이 되었다.


내친 김에, 우리는 아이랑 첫 등산을 시도해보았고, 세상의 끝의 섬으로도 가보았다. 그냥 수영장이나 흔히 아이들 데리고 가는 곳들에서 보장된 적절한 행복을 누릴 수도 있었지만, 약간의 모험과 도전 속에서 '마음의 벽'을 넘으며 행복의 진수를 맛보았다. 행복 연습은 마음의 벽 넘어서기다. 마음의 벽을 자꾸 넘어서 달려가고 뛰어들고 몸을 일으켜야 한다. 반대로, 마음의 벽 안쪽에만 계속 머물다보면, 세상은 곧 무감각한, 무표정의 권태로 뒤덮인다. 불현듯 내 앞에 나타난 어느 아이의 미소에 편히 답할 수도 없게 된다.


누구든 행복할 권리가 있다. 18세기 미국독립선언에서부터 행복추구권이 규정되어 우리 헌법에도 아직까지 있다는 건 꽤 의미심장한 일이다. 그런데 헌법에 행복추구권이 규정되어 있다고 해서, 우리가 늘 제대로 행복을 추구하는 건 아니다. 그런데 행복은 매일 추구하지 않으면, 우리 삶에 오지 않는다. 행복을 연습해야 한다. 애써 웃고 세상에 마음을 열어야 한다. 그러면 어느덧 세상이 밝은 미소를 띄고 내게 오기 시작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름다움은 악마와 거래하여 얻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