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들어 하나 느끼는 것은, 내가 남이 이끌어주는대로 잘사는 삶을 부여받지 못했다는 점이다. 세상에는 누군가가 이끌어주는대로 살아가며, 잘 사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아마 과반수 이상의 사람은 그 누군가가 이끌어주는 부분이 삶에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삶을 부여받지는 못했다. 나는 어떻게든 나 스스로를 이끌어야 하는, 내가 나의 리더가 되어야 하는 삶을 살도록 운명지어진 것 같다.
가끔은 나도 남이 이끌어주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부러울 때가 있다. 남이 주거나 시키는 일을 하고, 그 누군가가 나서는 길을 따라 나서고, 누군가 이끌어주는 길을 착실하고 성실하게 따라가면서 삶의 안정성을 얻고, 잘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나는 말하자면, 내 삶의 주도성을 잃어버리면, 물이 없어 시들어 죽는 화분과 같은 운명을 타고난 건 아닐까 싶곤 한다. 나는 주도성이라는 나의 산소호흡기를 쥐고 있어야 한다.
이런 삶이 꼭 좋은 삶의 표본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오히려 주도성이 필요한 삶이 제대로 살기는 더 어려울지도 모른다. 삶을 하나부터 열까지 나의 의지력으로 채우지 않으면 안되고, 스스로의 모든 일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져야한다. 주도성 있는 삶은 의지력과 책임이라는 두 바퀴로 달리는 마차다. 남이 시키는 일을 하며 사는 것도 만만치 않게 힘들고 어려운 삶이겠지만, 이 주도성 있는 삶을 설계하며 나아가는 것도 정말이지 쉽지 않다.
다행인 것은 내 주위에 삶을 '주도적으로' 살지 않으면 몸이 간지러워 견딜 수 없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나는 그런 사람들이 좋아서, 부지런히 인터뷰를 다니기도 한다. 나아가 그런 사람들을 만나며 의지력도 수혈받고, 책임감을 마음 깊이 새기는 법도 배운다. 사람이 힘을 얻는 건 사람으로부터라는 건 꽤나 자명한 일인 것 같다. 살아갈 힘은 어디 허공에서 얻는 게 아니라, 다른 인간으로부터 얻는 것이다.
독립하여 개업을 한지도 딱 반년이 지났다. 반년 간의 일들을 이루 헤아릴 수 없다. 새로이 만난 사람들도 한 트럭쯤은 되었던 것 같다. 누군가는 나의 반년이 그닥 성과가 없는 반년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예를 들어, '매출 기준'으로만 평가하는 투자업자라면 내게 기꺼이 몇 백억을 투자할 만한 재목이라고 생각하진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나의 삶, 혹은 나의 마음, 서로의 무언가를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내게 이렇게 말한다. "너, 독립하고 더 좋아보여. 독립한 뒤로 글이 더 와닿아." 그러니까, 나는 어떤 좋음을 찾아나가고 있다. 더 좋음을 아는 길로, 시행착오와 함께, 계속 나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