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자 했던 일들이 실패하고, 사람들이 뒤통수를 치고, 개인적인 신변에도 어려움들이 누적된다고 느낌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것들을 넘어 나아가는 마음이 있다면, 그런 마음은 참으로 멋져 보인다. 살아가다 보면, 때때로 세상 전체가 나를 막아서고,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장애물처럼 보일 때가 있다. 그럴 때, 그 모든 것들을 짓밟고 올라서서 기어코 가고자 했던 길로 나아가는 마음의 굳건함이란, 참으로 아름답고 존경스럽기도 하다.
마치 아무리 칼로 베고 또 베어도 팔을 재생시키고 변신하며 죽지 않는 혈귀를 기어코 베고 또 베면서, 온 몸이 불타고 피투성이가 되어도 결국 혈귀를 죽이고야 마는 혈귀사냥꾼의 마음이 그와 같다. 만화 <귀멸의 칼날>에는 인간을 잡아먹는 괴물인 혈귀가 나오는데 이를 베어야 하는 것은 반드시 해야하는, 타협할 수 없는, 온 몸이 만신창이가 되어서도 인류를 위해 반드시 해야하는 사냥꾼의 임무다. 삶에서도 때로는 꼭 그와 같은 마음의 힘이 필요하다.
개인적으로 내가 주변에서 존경하는 사람들을 보면, 힘든 순간 없이 평생 고속도로를 달렸다고 말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때로는 어떻게 저 모든 것을 견딜까 싶을 정도로, 삶의 온갖 것들이 산산이 무너지는 중에도 기어코 갈 길을 간다. 내가 아는 한 작가는 지난 몇 년간을 통째로 바쳤던 중요한 작업들이 상당수 좌초되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호쾌하게 자기 길을 걸어간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그 마음을 닮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삶에서 힘든 일들은 안 일어날수록 좋은 것 같지만, 그런 바람은 뭔가 자기만의 길을 걸어간다는 의미와 모순되는 바람인 것 같다. 우리가 여행지에 내려 가이드의 안내를 따라 패키지 일정만 따라가면, 그다지 힘들 게 없다. 그러나 교통 편이든, 숙박이든, 보고 싶은 것이든 스스로의 스타일에 따라 나아가려고 하면, 반드시 걸리적거리는 것이나 다양한 시행착오가 생기기 마련이다. 그런 것들이 없길 바라는 '자기만의 여행'이란 사실 그 자체로 모순인 것이다.
세상에는 수많은 욕망들이 있고, 그런 타인들의 욕망은 나의 욕망과 계속하여 충돌하기 마련이다. 그럴 때, 스스로 중심을 잡고 자기 삶을 잘 지켜내며 나아가지 못하면, 타인들의 욕망의 먹이가 된다. 나아가 삶에서는 내가 원치 않거나 예기치 못했던 사고들도 끊임없이 생겨난다. 왜냐하면 이 세계란, 나 혼자만이 주인공인 가상의 꿈의 세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 마음과 현실이 다르며 충돌하고, 내 마음이 부정당한다는 이유로 지나치게 좌절해버리면, 이 세상에서 살아나갈 방법이 없다.
내가 30대가 되고, 아이 아빠가 되고, 10년차 작가이자 변호사로 살아가게 되면서 가장 필요하다고 느낀 것도 바로 이런 마음이다. 상대방 변호사나 검사가 뭐라 하든, 나는 나의 의뢰인을 위하여 갈 길을 가야한다. 어떤 유혹이나 배신이 있든, 나는 내 길을 가야한다. 내 삶에 어떤 문제가 일어나고 나를 두렵거나 불안하게 만들든, 나는 내 길을 가야한다. 누군가가 무슨 터무니 없는 이유로 나를 욕하고 뒤에서 훼방을 놓든, 나는 내 글을 쓰며 내 길을 가야한다.
팔 하나와 눈 하나를 잃어도 혈귀의 목은 베어야 한다. 그렇게 내 삶을 살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고, 내가 의미있다고 믿는 삶을 실현시켜야 한다. 우뚝 선 마음으로 오늘의 걸음을 지켜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