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0대를 통째로 작가가 되는 데 바쳤다. 지금이야 글쓰기가 별 거 아닌 듯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생각해보면 글을 잘쓰고 싶어서 그야말로 환장해 있었던 때가 있었다. 십대 때부터 내가 좋아하는 작품들의 묘사 방법이나 스토리 흐름 같은 것을 분석하기도 했고, 이십대가 시작되고 나서는 매일매일 어떻게 하면 더 글을 잘쓸지 머리 싸매고 고민했다.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은 책 한권을 통째로 필사하기도 했고, 글을 쓸 때마다 국어사전을 뒤져가며 더 멋진 어휘가 없는지 항상 찾아보았다. 매일 글을 쓰면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을 거라 믿고, 말 그대로 하루도 빠짐 없이 매일 글을 썼다. 본가에는 당시 썼던 노트만 수십권이 있고, 그 시절 블로그에 쓴 글들만 몇 천편은 남아 있다. 단편소설만 30편은 썼고, 중장편 소설도 서너편을 썼다.
한 동안 그 시절을 잊고 있었는데, 얼마 전 김풍 작가랑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 시절이 생각났다. 사람이 나름대로 무언가를 잘하려고 하면, 적당히 가볍게 재미삼아 해보는 것으로는 택도 없고, 그야말로 목숨 걸듯이 인생을 갈아넣고 잘하고 싶어 발악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면서였다. 요지는 내가 지금처럼 유튜브를 적당히 하려고 하면, 절대 잘될 수 없다는 것이었는데, 나의 '글쓰기'를 떠올리니 단번에 납득되었다.
얼마 전, 궤도님이 유튜브에서 이야기한 영상을 봤는데, 흔히 사람들이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고 하지만, 자신은 물이 있건 없건 계속 노 젓고 있었다는 이야기였다. 물이 없으면 노로 땅이라도 파면서 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연한 기회로 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그가 '뜬 건' 하루 아침 일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얼마나 오랜 세월 '땅 짚고 노젓기'를 하고 있었는지를 듣고 깜짝 놀랐다. 어쩌다 잘된 것처럼 보이는 삶 뒤에는, 엄청난 삽질과 발악, 개고생과 간절한 정념이 숨어 있다.
요즘 나는 글 한 편 정도는, 별 부담 없이 앉은 자리에서 일이십분 정도면 써낸다. 언젠가부터 이런 게 너무 자연스러워진 나머지, 내가 그 전에 적어도 몇 천페이지에 달하는 글을 쓰고, 1만 시간은 커녕 수만 시간을 읽기과 쓰기에 갈아넣고, 동경하는 작가들을 닮고 싶어서 얼마나 전전긍긍했는지를 잊고 있었다. 그런 시절이 있었기에, 지금에서는 어쨌든 '글써서' 밥벌이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김풍 작가의 이야기만 들어봐도, 그 또한 일생의 작품을 그리기 위해 필사적인 훈련 과정을 거치며 한 세월을 보냈다.
삶이라는 게 쉬운 길이 있어 보이고, 쉬운 길을 간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늘 부럽기 마련이다. 실제로 '나만 따르면 쉽게 성공하고 부자 될 수 있다.'같은 콘텐츠가 대유행하는 시대이기도 하다. 그러나 내 삶을 찬찬히 돌아보고, 또 내 주변에서 존경할 만한 사람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들여다볼수록, 삶에는 '정도'에 가까운 진실이랄 게 있는 듯하다. 그 진실이란, 간절한 만큼 애쓰고, 그렇게 시간과 마음을 다하여 노력을 한 끝에야, 우리는 숙달이랄 것에 이르고, 그러고 나서, 이제 1인분하는 인간이 된다는 점이다.
이 진실을 알면, 삶은 의외로 심플해진다. 그냥 미친듯이 갈망하고, 그것을 위해 발악하듯 노력하며, 시간을 갈아넣으면 된다. 그러면 우리는 무언가가 된다. 그 단순한 진실을 믿을 수만 있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