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험생활에서 직장생활, 개업생활에 이르기까지 글쓰기는 내게 언제나 중요했다. 흔한 관점에서, 공부하는 수험생이 글쓰는 건 딴 짓하는 일에 불과하다. 마찬가지로 직장 인사팀에서 글쓰는 직원이 딱히 업무효율이 좋을 거라 생각하진 않는다. 사업을 성공시키려 해도 밤낮으로 일이나 해야지 글이나 쓰는 건 딱히 사업과 관련없는 일이라 말할 것이다. 그러나 내 생각은, 내 경험은 완전히 다르다.
나에게 글쓰기란 '깨어있게' 되는 일이었다. 나는 글을 쓸 때면, 비로소 가장 깨어있는 상태가 될 수 있었다. 이를테면, 수험생활에 공부를 할 때 그냥 교과서만 쭉 읽는 건 가장 '자는' 상태에 가까웠다. 그나마 문제를 풀거나 강의를 들으며 필기를 하면 조금 깨어있는 상태가 되었다. 그러다가 내가 직접 내 머릿속으로 정리한 것을 글로 '쓰기' 시작하면, 내가 가장 깨어있는 상태라는 걸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글쓰기는 나를 그런 상태로 만들었다.
그래서 수험생활 틈틈이, 가령, 쉬는 시간이나 밤 시간에 글을 한 편씩 쓰는 건, 나를 지속적으로 깨어 있게 만들었다. 정신이 명료해지고 뇌가 깨어나면, 공부의 효율은 몇 배 나아졌다. 이건 직장을 다닐 때도 마찬가지였다. 출퇴근 시간에는 거의 자는 상태였다. 회사에서 일을 하면서도, 거의 자는 상태일 때가 있었는데, 그러면 효율은 극도로 떨어졌다. 반면, 내가 나를 '깨울' 수만 있다면, 평소보다 일처리를 대여섯배 빠르게 하는 것도 가능했다. 그럴 때 글쓰기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예를 들어, 오전 내내 거의 자는 상태로 일을 하다가도, 혼자 점심 시간에 브런치 카페에 가서 글을 한 편 쓰고 나면, 정신은 고도로 깨어나서 식곤증도 없이 일의 효율이 좋아지곤 했다. 무슨 글을 썼느냐 자체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글쓰기이기만 하면 되었다. 지난 주말의 육아든, 사회 문제에 대한 비평이든, 어제 본 드라마의 리뷰든, 뭐든 쓰고 나면 나는 깨어났다. 그래서 지금도 내게는 글쓰기가 무척 중요하다.
혼자 맨 땅에 해딩하듯이 개업을 하고, 삶을 이끌고 나가고 있는 입장에서, 매일 깨어나는 것만큼 중요한 일도 없다. 반쯤 잠든 채로 일어나 반쯤 잠든 채로 하루를 보내고, 일주일을 보내면, 이 '개업 상태'에서의 삶이란 단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한다. 대신 매일 깨어나서 할 일을 찾고, 해야할 일들을 기민하게 정리하고, 우선순위를 정해서 해치운 다음, 미래를 계획하고, 다음 일거를 찾아 주변을 두리번 거리려면, 역시 야생에처럼 깨어 있어야 한다. 글쓰기는 나를 그런 매일 깨어 있는 상태로 만든다.
이런 깨어 있음은 단순히 공부나 일, 사업과 관련되어서만 중요한 건 아닌 듯하다. 아마도 나는 삶 전체에 '깨어 있음'이 무척 중요하다고 느낀다. 아이랑 보내는 주말도 자면서 보낼 수 있다. 같이 있지만, 제대로 시간을 보내는 게 아니라 그냥 같이 있기만 하면서 시간을 흘려보낼 수도 있다. 반면, 창의적인 놀이를 만들고, 함께 떠날 새로운 경험을 찾아보고, 또 신선한 추억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려면 '깨어' 있어야 한다. 그러면 확실히 더 좋은 시간을, 시절을, 삶을 산다.
관계에 있어도 깨어 있는 것의 중요성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제대로 반응하며 상대와 좋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는 깨어 있어야 한다. 때론 내 앞에 있지만, 잠든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다른 데 정신 팔려 있거나 실제로 깬 상태로 집중을 못하는 것이다. 그런 사람과는 좋은 관계를 맺을래야 맺을 수가 없다. 잠든 시간을 줄이면서 깨어난 시간을 늘여야 한다. 그러면 실제로 밤에도 숙면을 취할 수 있다.
붓다건 예수건 늘 '깨어 있으라'고 말한 것에는, 어느 정도 비슷한 면이 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그들의 영적 경지에서 깨어 있다는 건 전혀 다른 차원일 수는 있겠지만, 나같은 소시민의 입장에서도 깨어 있음은 중요하게 느껴진다. 나는 늘 깨어 있고 싶은데, 그 깨어 있음을 위해 글을 쓴다. 적어도 살아 있는 동안은, 더 명료하게 깨어 있고 싶어서 계속 쓴다. 계속 쓰는 사람이 잠들 방법은 없다. 어쨌든 계속 쓰면, 나아간다. 그래서 글쓰기는 걸음이고, 잠들지 않음이고, 죽지 않고 살아 있음이며, 나아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