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좋은 사람을 얻고 싶다는 식의 생각을 별로 하지 않게 된 것 같다. 그보다는 그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이 된다는 것이 관계의, 삶의, 세상살이의 본질 같은 게 아닐까 하고 느끼곤 한다. 흔히 말하는 좋은 사람들, 그러니까 좋은 인성, 좋은 직업, 좋은 명성, 좋은 평판, 좋은 능력을 가진 사람들을 얻고 곁에 둔다는 것이 과연 얼마나 의미 있는 것인지 의심해보게 된다. 그보다는 내가 그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주고, 서로 어울리는 존재가 되어가고, 그렇게 함께 살아가게 되는 사람들이 있을 뿐인 게 아닌가 싶다.
사람들의 희망이나 꿈 같은 걸 보면, 자기가 원하는 어떤 조건을 가진 그 누군가를 배우자나 친구로 얻길 바라는데, 과연 그런 식의 '방향'이 맞는 것인지 의심스럽기도 하다. 그러니까 욕망의 방향이 그렇게 내가 좋아보이는 무언가를 가진 사람을 얻고 싶다는 쪽으로 움직이는 게 정말 '원하는 것'을 얻게 되는 일인지 궁금하다. 그보다 그런 욕망의 방향은 어떤 착각이나 착오랑 비슷한 것이어서, 실은 내가 '진짜 원하는 것'으로 제대로 향하는 방향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이것은 의심이라기 보다는 거의 확신에 가까운 것이기도 하다. 삶의 본질, 혹은 관계의 본질이란, 내가 좋은 사람을 얻는 게 결코 아니고, 내가 그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라는 사실 말이다. 내가 그 누군가에게 실로 좋은 사람이 된다면, 나는 그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게 되고, 그 사람과 좋은 삶을 살아가게 된다. 그러나 내가 실제로 그의 입장에서 '좋은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 다른 수단과 방법으로 내게 '좋아 보이는' 사람을 얻는다면, 그것은 무언가 잘못된 방식이고, 결국 제대로 관계 맺는 것도 아니며, 좋은 삶을 살아나가게 되는 방향도 아니라고 믿게 된다.
이것은 그저 도의적이거나 착한 이야기가 아니라, 실질적이고 실용적인 차원에서의 이야기에 가깝다. 내가 실제로 '좋은 삶'을 살고 싶다면, 근사해보이는 사람들을 얻는 데 집중해서는 안된다. 설령, 그렇게 그 누군가를 얻는다 하더라도, 그것은 내가 좋은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은 착각만 줄 뿐이다. 그런 식으로 그 누군가를 얻는다고 한들, 실제로 내가 그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지 못하고, 그 사람과 좋은 관계로 함께 살아가는 데까지 이르지 못한다면, 그건 아무 의미가 없다. 오히려 서로에게 구속된 채로 삶을 망치는 길에 이를 가능성이 높다. 혹은 서로를 이용하다가 그저 서로 증오하는 관계로 돌아서거나, 실망만 할 가능성이 높다.
어떻게 보면, 그저 도덕 교과서에 나올 법한 이야기처럼 생각되지만, 나는 이게 일종의 삶의 비밀 비슷한 것이라 믿고 있다. 좋은 사람을 얻는 건 불가능하다. 오직 내가 그 누군가와 좋은 관계를 맺는 것만 가능하다. 비슷한 맥락에서, 내가 오직 나의 행복을 위해 그 누군가를 이용하고, 그로부터 행복을 얻는 건 불가능하다. 오히려 내가 내 곁의 누군가의 행복에 진정으로 기여할 때, 그와 함께 하는 삶도 진정한 행복에 들어설 수 있다. 좋은 사람을 얻고 싶고 행복한 삶을 살고 싶다면? 좋은 사람이 되고, 또한 내 곁의 존재의 행복에 기여하면 된다. 그것은 도덕군자의 길도 아니고, 이타적이고 숭고한 삶의 길도 아니다. 좋은 삶을 살기 위한 비밀 혹은 비법 같은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좋은 사람들을 얻어서 곁에 두고 나아가 소유하거나 지배하기를 원한다. 또한 무엇보다도 자신이 행복하길 원하고, 자기 삶의 곳곳에 기쁨과 만족이 넘쳐나길 원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콘텐츠랄 것이 그런 삶을 위한 것들이라 봐도 무방하다. 그런데 그러기 위해서는 관점의 근본적인 전환 같은 것이 필요한 듯하다. 그러면 삶의 비밀이 살짝 열리는 순간이 있다. 삶의 손짓이 보일 때가 있다. 묘하게도 그 삶의 손짓이라는 것은 내 안에 있지 않고, 나의 밖에, 나의 곁에, 나를 기울이는 방향 어딘가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