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나 사이에는 주문같은 말이 하나 있다. "우리는 화목하니까 괜찮아." 요즘 우리는 종종 이런 말을 할 때가 있다. 우리는 아파트가 없지만 화목하니까 괜찮아, 우리는 아이가 하나여도 화목하니까 괜찮아, 우리는 외제차가 없어도 화목하니까 괜찮아. 그런 이야기를 할 때가 있다. 이런 말은 아내가 처음 내게 했는데, 그 순간 기분이 참 좋았던 기억이 두고두고 남아 있다.
실제로 우리가 남들보다 더 화목하거나 사이가 좋은지는 모른다. 사실, 그런 걸 비교해서 누가 더 화목한지 따지는 것은 바보같은 일일 것이다. 그래도 아마 우리는 그렇게 믿는 것 같다. 우리는 사이가 좋아, 우리는 대화가 잘 통해, 우리는 서로를 참 좋아해, 우리는 서로 어울려, 그렇게 믿고 말한다. 아내가 그런 말을 해주면, 정말 그렇게 믿게 된다. 아내도 내가 그렇게 말해주는 걸 좋아한다. 그러면 정말로 우리는 '화목하니까 괜찮은 가족' 같다고 느껴진다.
우리 집에서는 나란히 앉아서 저녁을 먹는 식탁이 창가에 놓여 있는데, 맞은편에는 비싼 브랜드 아파트의 거실들이 보인다. 그러면, 종종 우리 또래 부부가 아이 둘을 데리고 15억쯤 하는 아파트에 살고 있는 풍경이 보일 때가 있는데, 약간은 소외감 같은 것이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런데 그럴 때도, 우리는 화목하니까 괜찮아, 라는 아내의 말이 생각난다. 가정마다 사정은 알 수 없는 법이다. 우리가 남들보다 얼마나 화목하거나 행복한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아는 한 내 주위에서 행복한 가족들은 얼마나 돈이 많고 적은가에 따라 갈리는 것 같지는 않다. 내가 아는 가장 행복한 가족 몇은 다 전세에 살고 있고, 부자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행복하다고 말하고, 정말로 행복해 보인다.
한번은 이런 생각도 해보았다. 만약 이 상태에서 정말 우리가 원하는 예쁜 마당 하나 있는 넉넉한 집이 한 채 생기면 더 행복할까? 그럴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조건과 지금의 행복을 바꿀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그렇다면, 우리가 더 '나은 환경'을 원한다고 해서 지금이 불행한가? 당연히 그렇지도 않다. 달리 말해, 우리는 지금 있는 결핍 때문에 불행하지 않고, 불행을 메우기 위해 더 나은 무언가를 바라지 않는다. 지금 불행하므로, 더 좋은 집이나 외제차를 얻어 그런 불행을 극복할 수 있다는 식으로 믿지 않는다. 나는 그런 상태가 참으로 좋은 것이라 느껴진다. 이런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주위의 부부들과 비교했을 때, 우리가 객관적으로 그렇게 남부러워할 만한 조건들을 두루 갖춘 경우라 보긴 어렵다. 그래도 주로 불행을 호소하는 사람들과 하나의 차이점은 있는 것 같다. 그건 적어도 둘이서, 그리고 셋이서 함께 보내는 시간은 남들보다 많은 것 같다는 점이다. 주말은 거의 셋이서 떨어지는 일이 없고, 저녁도 늘 같이 차리고 같이 먹는다. 여유 시간은 거의 다 가족에게 쓰고, 흔히 말하는 '바깥 사람'들을 거의 만나지 않는다. 그런데 주위에서 결혼생활에 만족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거의 다 비슷하다.
어쩌면 사람이란 결국 자기가 많은 시간을 쓸수록, 그 시간을 좋은 것이라 믿고 싶어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일에 많은 시간을 쓰면, 자신은 가치있는 일을 하니까 괜찮다고 믿는다. 글쓰기를 많이 하면, 나는 글쓰기라는 가치있는 시간을 썼으므로 괜찮다고 믿는다. 돈을 버는 데 많은 시간이 들어가면, 돈이 많아서 괜찮다고 믿는다. 마찬가지로, 가족에 시간을 많이 쓰면, 우리는 가족에 시간을 많이 써서 괜찮다고 믿는다. 우리의 가족은 화목하니까 괜찮고, 서로에게 그렇게 말하고, 정말로 그런 가족이 된다. 어쩌면 인생의 일이란 단순한 것이다. 그저 시간을 많이 쓰고, 그 시간에 그만큼 정성을 들이면, 그 시간을 좋은 것이라 믿고, 그만큼 가치있는 것이라 생각하게 되고, 그래서 그 시간 때문에, 다 괜찮다고 믿게 되는 것이다. 때로는 삶이란, 그렇게 단순하고도 명백하게 흐르곤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