짱구 또래의 아이를 키우고 있는 아빠로서, 이 장면을 오랜만에 만난 순간 갑자기 마음이 울컥하는 게 느껴졌다. 이 장면에는 슬프다고 밖에 할 수 없는 면들이 구석구석 담겨 있다. 하나는, 짱구가 아빠의 등을 바라보며 아빠의 자전거 뒤에 타 있다는 점이다. 두번째는, 이 날이 여름이라는 점이다. 세번째는, 별 생각 없어 보이는 짱구의 평온한 표정이다.
어린 아이가 아빠의 뒤에 앉아 등을 바라보며 자전거를 타는 시간은, 길어도 이삼년 남짓이다. 그보다 어릴 때는 아이가 위험할 수 있어 등 뒤에 태우기 어렵다. 그보다 크면 스스로 자전거를 타려고 하지 굳이 등 뒤에 타려고 하지 않는다. 인생에서 패달에 발이 닿지 않는 아이를 등 뒤에 태우고 달리는 일은 아주 잠시, 지나고 나면 몇 장면 잘 기억나지도 않을 짧은 시절의 일이다.
낚시대를 어깨에 올린 채 자전거를 몰며 여름에 떠나는 나들이라는 것도, 그리 자주 있을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어쩌면 짱구 아빠는 매일같이 회사에 출퇴근하며 일하다가, 일년에 딱 한 번 낸 여름 휴가를 가족과 보내기 위해 힘을 냈을 것이다. 좋은 날씨, 뭉게 구름이 솟아 있는 날, 아직 아이는 부모와 함께 여름을 보내는 그런 날, 인생에 몇 번 없을 여름 휴가가 그 속에 담겨 있다. 몇 년 뒤, 아이가 아빠의 자전거 뒤에 타서 낚시를 따라나서는 일은 끝날 것이다.
그런 인생과 시간의 진실이랄 것을 딱히 알 리 없는 짱구의 표정은 마치 자신이 영원히 그대로 그 자리에 있을 거라 믿는 것처럼 평온하다. 인간의 삶이란, 세월이 흐르면서 모든 것들이 사라지고 지나가며 잊혀지는 일이라는 걸 아이는 아직 제대로 모른다. 아이는 언젠가 자신이 어른이 되고, 아빠가 될 거라는 걸 머리로는 알겠지만, 사실은 지금이 그대로 영원할 줄 믿고 있다. 언젠가는 엄마와 아빠로부터 떨어져, 다른 누군가와 여름을 보내며, 삶을 사랑할 것을 아직은 모르고 있다.
나는 요즘, 가끔씩 아이의 두 눈을 뚫어지게 바라볼 때가 있다. 언제 이렇게 컸나, 아직 어린데, 아직 앳된 얼굴인데, 아직 이렇게 귀여운데, 참 많이 컸다. 그리고 아이가 아내와 이야기 나누는 걸 가만히 듣는다. 아직 발음이 아이 발음인데, 완벽한 어른 발음은 아닌데, 아직 아기 같은데, 그래도 정말 많이 컸다. 그래도 아직 부모가 자기의 세계이고, 엄마와 아빠랑 함께 있는 걸 좋아하고, 같이 놀아달라고 하고, 어디든 따라다니는, 나의 강아지인데, 이제는 친구랑 노는 걸 더 좋아하기도 하고, 자기 세계도 만들어간다. 그런 것들이 눈앞에 손에 잡을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가끔, 아이를 곁에 누이고 아이가 해달라고 하는 '재밌는 이야기'를 들려줄 때면, 나는 아직 '끝나지 않았구나.'하는 안도의 마음이 든다. 문어 나라 이야기, 굼벵이 세상 이야기 같은 걸 제멋대로 지어내 들려주면, 아이는 세상에서 제일 재밌다는 뜻 깔깔웃는다. 내가 집에서 운동을 할 때마다, 옆에 와서 따라하는 걸 보고 있으면, 아직 나와 너는 연결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이 여름도, 우리 셋이 마치 하나인 것처럼 보내는 나날들도, 점점 끝나가고 있다는 건 안다.
나는 삶을 우울하게 보는 사람이 아니고, 내가 어떤 삶의 국면에서도 나름의 기쁨을 잘 찾아낼 것을 스스로 믿는다. 그렇지만 삶이 본질적으로 슬프다는 사실은 잊지 않으려 한다. 언젠가 나에게 자전거를 가르쳐준 아버지, 나에게 그림을 가르쳐주고 이야기를 들려준 어머니의 자리에 내가 와 있듯이, 아이도 커서 다시 이 자리에 서게 될 날이 올 것이다. 그때쯤 되어, 나의 이 흩어질 마음을 아이가 기억해주고 이해해준다면, 삶의 가장 깊은 위로가 될 것 같다. 우리는 어쨌든 이 한 번뿐인 삶의 슬픔을 껴안고 서로를 위로하며 살아아야 한다.
아마 20년쯤 뒤에도, 짱구는 여전히 짱구일 것이고, 짱구 아빠는 하루 종일 회사에서 일한 뒤 돌아와 땀 채인 발의 냄새를 풍기는 짱구 아빠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아빠의 자리에는 아이가 있을 것이고, 아이는 또 다른 짱구를 품에 안으며, 이 시절을 기억해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