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에 대한 하나의 정의가 있다면,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을 뚫고 나가는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어떤 식으로 나를 싫어하거나 멸시하고, 왜곡하거나 험담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나아가 그로 인해, 큰 상처를 받고 움츠러들거나 삶을 포기하기까지 하는 등 삶에 커다란 영향을 받기도 한다.
자기의 글을 쓰겠다는 결심은, 그렇게 나를 부정하는 타자들을 배제하면서, 나의 길을 뚫고 나가겠다는 것과 때론 상응한다. 내가 믿고 싶은 삶, 내가 나 자신이고 싶은 방식, 내가 나를 받아들이고 싶은 정의로 나를 규정하면서 나아가는 것이 곧 글쓰기로 실현되기도 한다. 그럴 때, 다른 누군가는 반드시 내가 나를 정의하는 방식, 내가 내 삶을 좋아하고자 하는 방식을 싫어하고 비난하겠지만, 글쓰는 사람은 그것을 뚫고나가야 한다.
그렇기에 때로 글쓰기는 상당한 용기를 필요로 한다. 많은 사람들이 글쓰기 강의에서 내게 '글쓰는 용기'에 대해 고민하며 묻곤 한다. 나에 대한 이야기를 솔직하게 할 자신이 없어요, 누군가 비난할까봐 두려워요, 내 생각이 틀리면 어쩌죠, 같은 질문을 거의 매번 듣는다. 그러면, 나는 그냥 용기를 갖고 나아가는 것밖에 다른 방법은 없는 것 같다고 대답한다. 다만, 다행스러운 일이 하나 있다면, 글쓰는 사람은 선의의 동료 역시 얻을 여지가 있다는 점이다.
세상의 대략 절반 이상은 나의 생각이나 삶에 동의할 수 없다. 왜냐하면 모두 각자 경험한 게 다르고, 삶에 대한 믿음도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나는 아마도 세상에 10분의 1이나 100분의 1 정도는 나와 공감할 수 있는 사람도 있을 거라 믿고 있다. 글쓰는 사람이 자기 진실에 대해 써나갈 때, 그 전에는 만날 가능성 없었던 그런 10분의 1이나 100분의 1을 만날 '가능성'이 생긴다. 글쓰는 사람은 그들과 한 명 한 명 만나가면서, 선의의 울타리를 만들고, 그 울타리를 넓혀가면서 글을 쓴다.
아마도 거의 필연적으로, 글쓰는 사람은 선의보다 악의를 더 많이 만나고, 악의보다는 무관심을 더 자주 만날 것이다. 아무리 천사처럼 헌신적으로 봉사하며 산 성인에게도, 그를 증오하며 암살하려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하물며 각자도생 사회 속에서 간신히 자기 삶 하나 건사하며 살기 바쁜 현대의 개인들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거기에 대고 좋게 봐줄 사람보다는, 누칼협이나 알빠노 같은 걸 내세우면서 적극적으로 욕할 사람이 더 많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자기 삶을 살고 싶은 사람은 계속 자기 글을 쓰며 자기 길을 뚫고 간다.
이런 시대에 가지면 좋은 태도가 하나 있다면, 참견하기 좋아하는 온갖 사람들의 험담에 상처받기 보다는, 그저 나의 삶을 살면서 함께 살아갈 사람들을 찾고, 그들과 공감하고 사랑하는 데 몰두하는 일이라고 느낀다. 세상에 있는 온갖 악의적인 시선과 말들이 우리를 엄청나게 해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런 것들이 우리를 해칠 수 없는 선의의 울타리를 만들 수 있다고 믿는 것도 좋을 듯하다. 글쓰는 사람은 그런 믿음으로, 오늘도, 내일도 글을 쓸 수 있다.
* <끝나지 않는 글쓰기> 매거진은 글쓰는 사람들의 연대인 '글쓰기 네트워크'로 연결된 작가들이 다양한 이야기를 연재하는 공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