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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우 Feb 17. 2021

몰입과 도파민, 인생


보통 인생의 큰 전환점은 몰입과 관련되어 있는 듯하다. 무엇이든 그 무언가에 고도로 몰입하게 되면, 그 인생은 어딘가 바뀐다. 달리 말해서, 인생이 바뀌는 시점에는 무언가에 대한 몰입이 있다. 그것이 좋은 방향이든 나쁜 방향이든, 무언가에 몰입한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인생을, 라이프스타일을, 현재와 미래를 바꾸게 된다. 설령 그 몰입이 자발적인 것이든, 비자발적인 것이든 말이다. 


요즘에는 여러모로 재테크 열풍이 불면서, 재테크로 인해 인생이 크게 바뀌는 경우들이 많다. 특히, 내가 아는 거의 모든 사람이 주식 투자에 열을 올리고 있는데, 인생역전이라고 할 만큼 큰 돈을 번 사람도 있는 반면, 그만큼 큰 돈을 잃고 빚을 떠안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 주식 투자의 시작은 대개 자발적인 경우가 많겠지만, 실제로 그 주식 투자에 고도로 몰입하게 되는 경우는 거의 비자발적이고 강제적인 측면도 크다. 사람의 도파민 작용 등 심리 상태를 완전히 장악해버리는 보상과 손해의 기제, 원금 회복이라는 과정에서 사로잡히게 되는 전투적인 심리, 거의 목숨을 걸듯이 자기 인생의 경계에서 배팅하면서 얻게 되는 희열과 불안의 양극단 같은 것들이 점점 더 강제적으로 몰입하게 만든다. 


SNS나 콘텐츠 소비와 생산의 플랫폼에 빠져드는 것도 비슷한 데가 있다. 보통 SNS나 콘텐츠 플렛폼에는 흔히 '플레이어'라고 할 법한 생산자들이 있는 반면, 주로 소비자 혹은 단순 유저나 수용자들도 있다. 대개 그런 서비스에는 무언가 정보를 얻거나 콘텐츠를 소비하는 이들이 많이 빠져들 것 같지만, 실제로는 '플레이어'들이 더 깊이 몰입하고 빠져든다. 점점 늘어나는 구독자수, 그에 따라 얻게 되는 광고 수입이나 영향력 등이 그를 더 깊이 그 속에 빠져들게 만든다. 실제로 그에 따라 인생의 중심이 바뀌어버리는 경우도 많다. 인플루언서가 되어 원래의 직업을 그만둔다든지, 모델이 되거나 사업을 시작하는 경우도 많다. 


어쩌면 인간은 자기의 인생을 바꿀 만한 무언가에 대해 몰입하도록 프로그래밍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게 대박이든 쪽박이든, 인간은 자기 인생이 걸려 있을 법한 것에 더 고도로 몰입하고, 다른 현실들을 잊어버리며, 그 속으로 더 빨려들면서 고도의 흥분이나 희열을 느끼도록 만들어져 있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의 SNS와 플랫폼 서비스는 그런 인간의 프로세스를 매우 효과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것 같다. 인간의 몰입 기제를 이용해 시간을 빼앗고 덩치를 불리면서 거대한 영향력을 가진 서비스로 성장한다. 


몰입은 확실히 인생의 중심에서 사람을 쥐고 흔들지만, 한편으로는, 이를 통해 인생이 무언가 바뀐다는 착각을 느끼도록 조작하여 삶을 소비시키게 하는 방식으로도 많이 작동하는 것 같다. 어떤 일을 부지런히 쫓아가면, 무언가 명확하지 않은 이익을 얻을 것이고, 세상의 중요한 흐름에 속한다고 느끼게 해준다. 내 인생에 이보다 중요한 일은 없다고 믿게 만들면서, 사람을 그 속에 중독적으로 끌어들인다. 그러나 그런 몰입으로 인해, 정말 모두가 보다 '좋은 삶'을 살게되는가, 실제로 더 나은 삶에 속하게 되는가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있을 것이다. 


요즘들어, 내가 생각하는 것은, 삶을 확실히 더 나은 것으로 만들어주고, 실제로 자기의 삶을 좋은 삶으로 느끼게 해주는 것들이 꼭 희열과만 이어져 있는 것 같지 않다는 점이다. 오히려 꽤나 지리멸렬하지만 묵묵히 이어가는 일들, 오랫동안 서서히 이루어가면서 점진적으로 삶 자체가 되어가는 일들, 당장의 도파민 기제 속에서 이루어지는 몰입과 빼앗김과 획득 같은 매커니즘 보다는 삶 자체를 이루는 굵고 끈질긴 흐름 같은 것들이 삶을 진정으로 더 나은 지평 위로 올려주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런데 실제로 그런 영역이나 지평을 알고, 아주 오랫동안, 삶의 깊은 지하수 같은 것에 뿌리내리고, 삶을 더 좋은 것으로 이끌어가는 일을 매력적이라 느끼고 쫓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저마다 좋은 삶들이 있겠지만, 내가 특히 잊고 싶지 않은 부분은 삶의 그런 지하수가 있는 영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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