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인터넷에 강남 내의 부자 동네 사람들은 인성도 좋고, 사치도 하지 않는다는 식의 소위 '민도'에 대한 이야기들이 퍼지고 있다. 부동산 값이 비싼 곳일수록 사람들의 인성이 뛰어나고 민도가 남다르다는 것이다. 오히려 열등감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명품이나 외제차 같은 걸 밝힐 뿐, 진짜 부자들은 남들의 평판에 신경쓰지 않으며 편안한 차림으로 다니고, 사치에는 관심 없다는 식의 이야기다.
이렇게 퍼지는 이야기들은 당연히 어떤 실증 연구 등의 근거는 없이 순전히 개인의 '경험담' 형식을 취하고 있다. 내가 청담동에서 장사를 몇 달 해봤는데 말이야, 내가 하급지에서 상급지로 이사와봤는데 말이야, 내가 부자 동네에서 잠시 살아보거나 일해봤는데 말이야, 하는 식이다. 흥미로운 건 이런 근거 없는 경험담을 믿고 퍼뜨리는 사람들이 상당수 존재하고, 이를 의심해선 안되는 하나의 '진리'처럼 여기고 동조하려는 현상이 매우 강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 나라에서 부동산 값이 올라가는, 소위 상급지 사람일수록 부정부패를 저지르지 않고, 탈세를 하지 않으며, 인성도 뛰어나고, 사회 기여도 많이 하고 이타적이며 배려심 넘치는 등 객관적으로 '우수한 인성의 인간'임을 입증할 수 있는 자료는 이런 소문에 없다. 팩트 좋아하는 우리 나라 사람들이, 그렇게 검증도 되지 않은 어떤 미신 같은 경험담에 의존하여 소문을 확산시키는 과정은 꽤나 흥미롭게 느껴진다. 거기에는 실제로 '그렇다' 보다는 '그래야 한다'라는 당위가 매우 강하게 자리하는 것 같기에 더욱 그렇다.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의 마음이 작동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하나는 상급지를 동경하는 마음이고, 다른 하나는 상급지를 증명하는 마음이다. 그런데 사실, 이 두 가지 마음은 모두 동일한 구조 안에 있다. 상급지를 동경하는 사람에게나, 상급지에서 삶이 더 가치 있다고 믿는 사람에게나 '상급지 인간이 더 우월하다'는 믿음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러한 계급적인 믿음이 없다면, 이를 동경하는 사람은 높은 곳을 사다리 타고 올라갈 동력을 얻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인생의 모든 자원을 동원하여 상급지 이동을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아 열심히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그런 믿음이 곧 자기 삶이 틀리지 않다는 증거가 된다.
우리 사회에서는 요즘 많은 것들이 취향 차이라고 말해진다. 결혼이건 비혼이건, 싱글이건 딩크건 각자의 삶은 각자의 취향 문제일 뿐, 우월하거나 열등한 건 없다. 직업이나 취미, 패션 선택 등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한 가지, 부동산에 대해서 만큼은 그 어떤 시대보다도 공고한 계급의식이 만들어지고 있다. 이 계급의식은 단순히 어느 동네에 사는 게 좋다는 취향 차이의 문제로 환원되어서는 결코 안된다. 그것은 계급의식에 기반하여 인생의 동력을 삼고, 사는 동네로 비교하며 자존감을 얻는 사람들에게 치명적이다. 그렇기에 상급지로 갈수록 '인생의 질'이 본질적으로 달라진다는 신앙을 반드시 가져야만 하는 것이다.
근래에 부동산 광풍은 바로 이러한 계급의식과 그에 대한 신앙심이 없으면 설명하기 어렵다. 온 국가의 모든 자산이 서울 중심지 부동산으로 쏠리고, 가계부채는 타국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급증하며, 소득과 자산 간의 균형이 완전히 무너지고, 그로 인해 인류 역사상 거의 유례가 없을 정도의 저출산 사회가 만들어져 가는 모습을 보면, 이것이 합리적인 경제 행위라기 보다는 어떤 열광적인 마음과 이어져 있다는 의구심을 충분히 가질 수 있다.
그 열광적인 마음이란, 높은 곳으로 올라갈수록 그곳에는 다른 세상이 있고, 그곳에서는 다른 인류가 될 수 있으며, 더 나은 삶으로 인도받을 수 있으리라 기대하는 환상과 믿음의 결합체인 것이다. 그와 정비례하는 것은, 그 대열에 합류하지 못하면, 지역소멸 등으로 인해 우리가 사는 곳의 땅은 꺼지고 사라지며, 소외와 도태만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공포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이 신앙 안에서, 내가 사는 삶이 힘겹고 내 주변 환경도 이상하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내가 저 상급지의 천국으로 이동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곳은 단순히 객관적인 학군이나 인프라를 넘어서, 인성이 훌륭한 이웃들이 두 팔 벌려 아름다운 삶으로 우리를 초대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마지막 오아시스다.
사실, 이 열광적인 믿음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는 개인의 자유이자 선택이다. 그러나 갈수록 이것을 믿지 않는 사람은 잘못된 것이고, 도태와 불안의 이유도 이 신앙심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통념이 확산되고 있는 듯하다. 항상 딱히 상급지도 아니었던 내가 살아온 곳들이 내 삶에서 가장 소중한 곳들이었고, 그곳에서 내게 필요한 모든 값진 기억과 관계들이 있었다는 걸 생각해보면, 나로서는 다소 어색하게 느껴지는 시대 현상이기도 하다. 어쩌면 이것은 단지 내게 주어진 삶을 충분히 사랑할 방법을 잃어버린 사회에 나타나는 최후의 현상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진짜 우리 사회의 보편적 신앙대로, 저기 어디에는 인생 전체를 갈아 넣어서라도 도달해야만 하는 마지막 천국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