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는 지하철이나 마트에서 옷을 산다. 얼마 전에도, 지하철에서 5천 원짜리 반바지 2개를 득템했는데, 올 여름 가장 많이 입은 바지가 되었다. 옷 소비의 최대치는 아울렛 정도이고, 백화점에서 사는 경우는 인생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몰에서 좋아하는 브랜드를 꼽자면, 무인양품 정도다. 아내도 처음엔 '지하철에서 옷을 사다니!' 했지만, 내가 득템해오는 괜찮은 옷들을 보며 점점 납득하는 분위기다.
이렇게 보면, 엄청난 짠돌이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사실 내가 소비를 꽤 많이 하는 영역은 따로 있다. 나는 책을 괘 많이 사고, 흥미가 가는 책들은 거의 바로바로 구매하는 편이다. 한 달에 몇 십만원치 정도는 사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나는 책이 '순수한 소비'와는 조금 다르다고 생각하는데, 책 한 권 한 권이 내게는 다시 글쓰기를 통한 콘텐츠 생산이 되는 절대적인 밑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읽은 책들은 어디에서든 반드시 한 번 이상은 인용한다. 칼럼이든, 강의든, 책이든 내가 산 책은 소비에서 끝나지 않고 반드시 생산으로 되돌아온다. 그래서 나는 책을 사는 행위가 일종의 선순환이라 믿는 자기합리화의 영역에 도달해 있다. 책을 사지 않고 읽지 않으면, 나는 매번 했던 얘기만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인간이 될 가능성이 높다. 반면, 계속 책을 사서 읽어내는 만큼 귀한 영감을 받고 새로운 이야기도 할 수 있는 인간이 된다.
사실, 그래서 요즘 사람들이 상상 이상으로 책을 읽지 않는다는 게 내게는 좀 낯설다. 얼마 전, 아이 학습지 선생님이 내가 책 택배를 주섬주섬 뜯는 걸 보더니, "와, 아버님. 책을 사시네요!" 하고 놀랐는데, 나도 속으로 뜨끔 하고 놀랐다. 그렇구나, 요즘 사람들은 책 사는 게 엄청 놀랄 일이구나, 싶었다. 근래에는 지하철 타고 다닐 일이 많은데, 실제로 지하철에서 종이책 보는 사람은 거의 같은 칸에 나 밖에 없거나 한 명 정도 더 있는 게 대부분이다.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삶에서 나는 책 소비와 옷 소비를 꽤나 대척점에 놓는 편인데, 옷은 일단 전 세계적으로 패스트패션의 해악이 그야말로 지구를 멸망시키는 단계에까지 가고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신상을 소비하기 보다는, 차라리 남은 재고를 사러 가는 게 묘하게 지구를 위한다는 합리화도 할 수 있다. 반면, 책은 재활용도 훨씬 용이하고, 중고로 처분하거나 주변에 나눠줄 경우 계속하여 반복해서 읽힌다는 점에서, 조금 더 환경적으로 낫지 않나 싶다. 물론, 궁극적으로 더 환경을 생각한다면, 전자책으로 완전히 넘어가는 게 바람직할 수 있는데, 나는 일단은 종이책을 사랑하며 지구를 약간 파괴하고 있다.
또 하나 책이 좋은 점은, 스마트폰은 일정 시간 이상 들고 있으면서 이것저것 정신없이 넘기며 보다 보면, 상당한 피로가 몰려오는데 책은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오히려 책은 편안한 수면까지 유도하는 것 같다. 책 한 권에 몰입하고 있을 때는, 스마트폰이 자극하는 묘한 피로가 없다. 그래서 풀리오 어깨 마사지와 종아리 마사지를 하면서 책을 읽고 있으면, 하루의 피로를 씻는데 그만한 게 없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이건 경험적으로, 넷플릭스나 모바일 게임도 못 해내는 일 같다. 책이 주는 평안의 효과가 대단하다.
아무튼, 그렇게 책 사고 책 읽는 사람이 희귀해진 시대지만, 여전히 나는 책을 읽고 쓰고, 그렇기에 책을 사고 읽어주는 사람들에게는 상당한 연대의식과 고마움, 동질의식을 느끼고 있다. 세상이 어떻게 흘러가든 세상에는 책 읽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그런 존재가 주는 위안이 매우 크다. 이 지구 어딘가에, 모두가 유튜브랑 넷플릭스만 보고, 게임만 하며, SNS만 하기 바쁜 시대에, 어딘가 앉아서 고요히 책을 읽는 사람의 존재가 있다는 건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지. 그 멸종위기 종들이 다 사라지고 나면, 더 이상 지구에 살고 싶지 않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