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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우 Sep 19. 2024

유뷰버와 인플루언서의 '나락'에 관하여


올해 최대의 키워드 중 하나는 '나락'이 아닐까 싶다. 각종 사기, 협박, 공갈에 휘말린 인플루언서들부터 혐오 발언이나 말실수, 대중에게 거슬리는 행동으로 '나락'에 갔다고 말해지는 유튜버 등이 적지 않다. 사람들로부터 엄청난 인기를 얻으며, 몇 십만, 몇 백만 구독자와 팔로워를 얻었던 이들의 추락이 사람들 사이에서 크게 화제가 되고 있다. 


유명인이 '나락'으로 가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어느 정도 공통점이 있다. 나락은 사람들이 '믿는' 그 사람의 모습과 '실제'가 다르다는 것이 드러나는 순간들에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그는 인성이 좋은 줄 알았는데 알고 봤더니 타자를 혐오한다. 그는 우리와 같은 찐따인 줄 알았는데 점점 신분이 상승하는 것 같더니 주제 넘는 일을 하려고 한다. 그는 정의롭고 좋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사기를 쳤다. 이 괴리가 곧 나락으로의 낙차다.


즉, 나락으로 가는 건 단순히 인기를 누리는 상태에서 인기가 없는 상태로 떨어지는 것만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대중들이 믿는 '그 사람의 이미지'에서 그가 추락하여 '실제 자기 자신'이 된다는 의미도 있다. 나락이란 그가 유지해왔던 이상 혹은 이미지의 천국에서 떨어진 현실이기도 하다. 이것은 우리 시대의 무척 흥미로운 현상이다. 모두가 실제 보다는 가상을 보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우리는 가상을 바라보며 가상 속에 있는 이미지로서의 타인을 원한다. 


그는 내가 친밀감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찌질하거나 내가 동질감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솔직해야 하지만, 동시에 나만큼 불완전하거나 허술해서는 안되고, 윤리적으로는 이상적이어야 한다. 그는 나 같은 평범한 인간이지만, 동시에 진짜 평범한 인간처럼 초심을 잃거나 실수를 하거나 도덕적 결함이 있어서는 안된다. 만약 이러한 '니즈'에서 벗어날 경우, 그는 나락으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가 구경하는 천상에서는 그런 '니즈'를 충족시켜줄 새로운 얼굴이 등장하면 그만이다.


그런데 이 모든 건 사실 허구에 불과하다. 인플루언서가 아무리 나에게 친밀감을 주어봐야, 나랑 진짜 친할 수는 없다. 내가 그에게 화면 속에서 동질감을 느낀다 하더라도, 그의 실생활은 이미 내가 닿을 수 없을 만큼 저 높은 곳에 가 있다. 내가 방구석에서 라면을 먹는 먹방을 보며 함께 라면을 먹고 있다 한들, 그는 먹방으로 100만 구독자를 거느리며 월에 억 단위는 우습게 벌고 있다. 그가 찌질함을 연기하더라도, 더 이상 실제로는 찌질하지 않아 하룻밤에 몇 백만원 정도는 우습게 쓰며 대접받고 있을 수 있다. 내가 그에게 느끼는 동질감은 사실 진짜가 아니다. 


흥미로운 건 사람들이 그 사실을 모르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화면 너머에서 나에게 비웃음 당하는 그 사람이 이제는 건물주라는 걸 알면서도, 그가 주는 가짜 친밀감을 누린다. 모든 게 가상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 감정을 즐긴다. 문제는 그 모든 것이 아슬아슬한 '가짜'로 유지되다가 '진짜 현실'에 폭로당할 때이다. 이러한 폭로는 언젠가 반드시 일어나게 되어 있다. 우리는 살얼음 위를 걷는 것처럼 그 모든 게 아슬아슬한 가짜인 걸 알지만, 계속 가짜로 있어주길 원할 뿐이다. 


만화 캐릭터를 뒤집어 쓴 버튜버들의 인기도 같은 맥락에 있다. 사람들은 버츄얼 캐릭터 너머에 있는 진짜 인간의 출현을 허용하지 않는다. 펭수 탈을 벗어던진 인간이 나타나는 순간, 펭수의 인기는 끝난다. 나락은 우리가 즐기고 싶은 '가짜' 이미지를 더 이상 유지하지 못하고 '진짜'를 드러낸 인플루언서에게 내리는 형벌 같은 것이다. 우리는 착각과 가상을 원하는 시대의 시민이다. 


이런 시대에는 확실히 어떻게 '진짜 삶'을 찾을 것인지가 중요한 화두일 듯하다. 내가 누리는 모든 것들 가운데에서, 진짜 인간, 진짜 감정, 진짜 삶을 찾아내야만 하는 것이다. 사실 봐야할 건 유튜브 속에서 그럴싸한 친밀감을 주는 사람의 얼굴이 아니라, 내 곁에서 내 손을 잡아줄 진짜 사람일 수 있다. 누려야할 건 그럴싸한 가상이 아니라, 생생하게 내 손 끝에 잡히는 진짜 삶일 수 있다. 즐겨야할 건 불완전하지만 그만큼의 인간성으로 살아 숨쉬는 나의 간절한 관계, 나의 생생한 삶, 나의 역동하는 감정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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