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는 가장 감격스러웠던 순간 중 하나로, 자신의 소설을 읽던 한 독자가 사랑하는 사람이 너무나 보고 싶어 새벽에 달려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 이야기는 나에게도 무척 인상적이었는데, 글이 지닌 힘을 말해주는 것 같아서였다. 글은 그냥 흰 종이에 갇혀 있는 검은 선이 아니다. 글은 때론 종이를 뚫고 나가 사람의 마음에 불을 지피고, 그를 사랑 한 가운데로, 삶 한 가운데로, 존재 한 가운데로 데려간다.
이번에 신간 <돈 말고 무엇을 갖고 있는가>가 출간되었다. 이 책은 어떻게 보면, 지금까지 내가 쓴 책 가운데 가장 그런 '책 밖으로 뛰쳐 나갈 수 있는 '힘'이 담기길 바란 책이다. 언젠가 내 책에는 '인생을 관조'한다거나, 사회를 '담담히 비평'한다거나, 사랑을 '고요히 돌아'본다는 식의 수식어들이 따라다녔다. 나는 그런 말들을 싫어하진 않았지만, 내 글이 때로는 책 밖을 뚫고 나가, 누군가가 살아가고 사랑할 힘을 주길 바랐다.
이 책은 나의 그런 염원이 처음부터 끝까지 고스란히 담긴 책이다. 처음으로, 나는 이 책을 쓰면서, 독자가 이 책 앞에 가만히 언제까지고 머물러 있지는 않길 바라는 마음을 가졌던 것 같다. 오히려 이 책이 누군가의 마음 어딘가에 닿아, 그가 일어나서, 자기의 삶으로 뚜벅뚜벅 걸어나갈 수 있는 힘이 이 책에 실려 있길 바란다. 그렇기에 이 책은 내 삶에서 가장 실천적이고, 내 개인적인 역사에서는 독특한 위치를 지니고 있다.
그렇게 이 책은 내가 살아오면서, 또 앞으로 살아가면서 필요한 내 나름의 실천 강령들을 정리한 책이면서, 동시에 삶의 가치관에 대해서도 많이 싣고자 했다. 요즘에는 흔히 '돈'이 모든 이슈를 집어삼키는 블랙홀이 되어, 돈 말고 다른 가치는 아무런 관심도 없는 시대가 되었다고 한다. 그런 시대에, 내가 나의 중심을 지키며 어떻게 살 수 있는지에 대해, 나름대로 치열하게 고민한 결과물이기도 하다.
아무튼, 이렇게 책은 나왔고, 또 운명에 따라 이 책을 가치있게 여겨줄 분들께 가 닿을 거라 믿는다. 누군가는 이 책을 읽어서 다행이라 여겨주고 말해주길 기다려본다. 누군가의 진실이 내 삶에 닿아 내 삶의 항로가 되고, 별자리가 되어주었듯, 이 책도 그 누군가에게 별자리 구석의 작은 별 하나 될 수 있다면, 더할나위 기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