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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란 김아람 Jul 29. 2024

다른 세상에 들어가기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은 정말 다양하다. 감히 내가 상상 못할 삶을 살고 있구나 라는 문화충격을 오늘 진하게 겪는 중이다. 덕질을 시작하며 동굴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간 춘기 딸과 대화를 하려면 내가 그 동굴 밖에서 소리를 지를 수 밖에 없었다. 늘 동굴의 입구에서 동굴 속을 아는 척 하며 할짝이며 딸을 불러내기만 하던 내가, 오늘은 정말로 그 속으로 걸어들어갔다.


몇 달 전이었다. 중학교에 입학한 딸을 라이딩 해주며 학교 생활에 대해 이것 저것 물어보면 대답을 하기 너무 귀찮아하고 말시키지 말라며 자꾸 말을 끊었다. 그래서 한번은 참던 내가 너무 화가 나서 해서는 안될 말을 했다. "야, 나는 너가 뭐하고 사는지에 관심이 있지 A가 (아이돌 그룹) 뭐하는지는 1도 관심이 없어. 그런데 왜 맨날 너는 나한테 A 이야기 아니면 아무 말도 안 하는거야. 난 이제 A가 싫어!."


딸은 줄줄 울더니, 이제 자기도 그러면 엄마에게 A 이야기 안하면 되는거 아니냐며 그나마 열려있었던 동굴 문을 완전히 닫아버렸다. 단절된 시간을 더 괴로워하며 절친 동생이랑 둘이 술을 먹으며 딸에 대한 서운함을 막 토로했다. 그 동생은 그녀의 엄마와의 관계를 나와 딸과의 관계에 자주 투영한다. 그래서 그런지, 내가 하소연 할 때마다 주로 나보다는 내 딸 편을 들어줬었다. 내 이야기를 한참 듣더니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 그럼 딸은 A 이야기를 누구에게 해요? 딸이 얼마나 외로울까요?"

나는 띵 머리를 맞는 것 같았다. 아.. 나는 내가 외로운 것에만 성질이 나있었지, 아이도 나때문에 동굴 밖으로 못나와서 외로웠을 수 있었겠다 싶었다. 화해하려면 큰게 필요했다. 나는 아이가 고대하던 이번 서울 콘서트에 실제로 처음으로 만날 수 있도록 조력하기로 했다.


빨갛게 동그라미가 쳐있었던 대망의 티케팅날, 나는 휴가를 내고선 잼민이들에게 점령당한 피씨방에  한가운데에 앉아서, 비장하게 클릭질을 하며 몇십만명의 대기를 한시간 반동안 기다려서 극적으로 구석쟁이 표 한 장을 구했다. 그래서 딸과 둘이서 처음으로 서울 여행을 할 명분을 만들었다. 이번 여행은 내 궁금증으로만 딸을 몰지 않고, 그냥 아이가 하는 이야기를 최대한 열심히듣기로 했다. A가 뭐가 멋있고, 어떤 라방을 했고, 내일 몇시부터 줄을 대기해야 하고, 어떤 나눔존에서 뭘 할껀지 티엠아이도 그런 티엠아이가 없는 스토리에 내 귀는 피가 나다 못해 코끼리귀처럼 두꺼워져 버렸다.  


귀는 그나마 면역이 되었는데, 몸을 함께 하려니 체력이 후달려서 쉽지 않았다. 오늘은 동굴의 가장 안쪽, 그러니깐 난생 처음 거대 공연장으로 진격하는 날이었다. 바람하나 없는 미친 습한 땡볕 속에서 수만명의 전세계 팬들의 빼곡한 인파는 상상 이상이었다.  온 몸의 땀구멍에서 땀이 쉼 없이 줄줄 흐르는 가운데,  밀집된 줄 속에서 한없이 기다리는 하루 종일의 줄서기, 처음 가본 장소에서의 여러가지 개고생들 끝에 (딸에게는 하나의 축제) 저녁 입장시간이 되어서 드디어 아이를 입장시켜줬다.


동굴 안은 상상 이상으로 달랐다. 한명 한명 다 독특하고 이상했다. 온갖 언어의 외국인들은 아주 신기한 차림새와 기묘한 아이템을 장착하고선, 이 더위를 아랑곶 하지 않고 아무데나 돗자리를 펴고 얼굴이 달아올라도 다들 바짝 붙어서 즐겁게 기다리는 것처럼 보였고, 나만 체력에 후달려서 얼음물로 연신 얼굴을 비비는 이방인 1인이었다. 지금 나는 인근 까페로 도망쳐서, 잠시 글을 쓰며 숨통을 튀우고 있다.  


도대체 왜 동굴 속으로 들어가 이 소속사의 장난질에 놀아나는지 이해가 안갔는데, A 영상을 검색해 보고 있으니 전세계에서 여기까지 왜 찾아오고 왜 울고 불고 하는지 조금은 알 것도 같다. 이 녀석들 충분히 귀엽고 충분히 매혹적이다. 별 이상한 옷을 입고 인형을 주렁주렁 매달고 이상한 아이템을 자꾸 몰래 사며 이해 안되게 돈 쓰던 아이가, 오늘 만큼은 이 곳에서 그렇게 평범할 수가 없다. 땀으로 젖어 절뚝이며 까페에 들어왔는데, 내리 에어컨 샤워를 맞고 있으니 슬슬 머리가 몽롱해지고, 잠도 온다.


영상을 보다 보니 이 그룹의 각 캐릭터도 좀 알 것도 같고, 이번 앨범 컨셉도 알겠고, 뭔가 이 거대 자본 한가운데의 요상한 동굴이 조금 익숙해진다. 자꾸 글쓰다 멈추고 영상을 보고 있다. 이러다 나까지 동굴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면 안되는데, 정신 단디 챙겨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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