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같은 프리랜서이자 자영업자는 매년 계단을 만들며 살아야 한다. 스스로 딛고 올라설 수 있는 계단을 매년 하나씩 만들지 않으면, 그 다음에는 낭떠러지가 있을지 내리막길이 있을지 알 수 없다. 올해는 한탕 벌고 없어지거나 소모되면 그만인 해가 아니라, 내년으로 갈 수 있는 계단이 되어야 하는 해다.
계단을 만드는 방법에는 몇 가지가 있다. 가장 흔한 방법은 단골을 만드는 것이다. 내가 맡은 일에 충실하면서, 조금씩 신뢰를 쌓고 단골을 하나씩 만드는 것은 가장 흔하고 널리 알려진 '계단 만들기'의 방법이다. 반대로 말하면, 고객이 생겼다고 해서 최대한 뜯어내고 가성비 좋게 한탕만 치려고 하면, 매번 그 순간 버는 돈 말고는 아무것도 없게 된다. 그는 내년에 또 새 고객을 구해서 등처먹어야 하는데, 매번 새로 구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또 다른 방법은 조금 더 용기가 필요한 방법이다. 매년 조금씩이라도 새로운 일을 확장해보는 것이다. 아주 사소하게는 카페에서 이전에 없던 메뉴를 만들어보는 법이 있다. 매번 커피만 팔다가 팥빙수를 팔아보는 것이다. 그러면 의외로 여름의 새로운 매출과 손님을 얻는 계단이 될 수도 있다. 이런 계단 만들기는 '새로운 메뉴 추가' 같은 사소한 것에서부터, 지점 확장이나 새로운 업종에 도전하는 일 등처럼 큰 일까지 그 범주가 매우 넓다.
나 같은 경우에는, 작년에 쓴 저작권법 책이 좋은 계단이 되었다. 덕분에 저작권 칼럼 기고나 강연을 많이 할 수 있었고, 자영업자로서 전문성을 쌓고 살아가는 데 매우 의미 있는 계단이 되었다. 올해 공공저작물 전문 강사에 도전한 일이나, 교권보호위원회의 위원을 해보고자 한 일, 전세피해센터의 법률 지원 변호사가 되고자 한 일 등도 모두 작은 계단 만들기의 일종이었다. 이런 계단들을 만들지 않으면, 그냥 들어오는 사건만 해결하고 돈 벌고 끝난 해가 되어버릴 수 있다. 그러나 앞으로 30년은 이 일을 해야하는 입장에서, 그런 소모적인 방식은 그리 현명하지 않다.
부지런히 자신의 일을 알리고자 애쓰는 것도 일종의 계단 만들기에 해당한다. '나는 어떤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라고 세상에 말하지 않으면, 세상은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알 방법이 없다. 특히, 요즘처럼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자기를 PR하는 시대에는, 가만히 있어도 사람들이 찾아와주길 바라는 건 일종의 오만이나 헛된 희망에 가까울 수 있다. 다들 어떻게든 살아남고자 그토록 애쓰는데, 나는 별 노력 없이도 사람들이 구름처럼 찾아올 거라 믿는 건, 어딘지 게으름이나 오만, 회피와 연결된 면이 있는 것이다. 자영업자가 그래서는 곤란하다고 밖에 할 수 없다.
편집자님의 말에 의하면, 나는 열심히 '발로 뛰는' 작가라고 한다. 작가 중에는 그냥 원고만 주고는 나몰라라 한 채로 기도만 하며 기다리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아니면 출판사 탓만 하면서 마케팅을 요구만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책이 나오면, 일종의 의무감을 갖고 최선을 다해 한 동안 발로 뛴다. 그것이 내 글을 알아봐주고 나를 믿어주고 내 책을 최선을 다해 만들어준 편집자와 출판사에 대한 예의라고도 믿고 있다. 함께하는 동료 자영업자들끼리 '으쌰으쌰' 해야 한다.
한 땀 한 땀 매일매일 벽돌을 쌓듯, 내년으로 가는 계단들을 만들지 않으면, 폐업하고 문 닫아야 하는 게 자영업자의 운명이 아닐까 싶다. 나는 한철 장사하고 인생을 접을 게 아니라, 앞으로 30년은 일하면서 30계단 그 이상을 올라야 한다. 그렇기에 더 깊은 신뢰를 쌓고, 더 용기를 발휘하며, 내가 언제나 이렇게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사실을 세상에 말해야 한다. 그렇게 쌓아올린 계단들을 걸어서만 이 기나긴 삶을 오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