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지우 Nov 01. 2024

오빠야는 그냥 일상을 따뜻한 이야기로 만드네

모처럼 집에 놀러온 여동생이 내가 쓴 책을 보더니 말했다. "오빠야는 그냥 평범한 매일의 일상을 따뜻한 이야기로 만들어내서 신기하네." 나는 그냥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내가 며칠 출장을 간 사이, 나는 늦은 밤 글쓰기 모임이 있었고,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다가 여동생에게 와줄 수 있냐고 물었다. 여동생은 당연하다고 하며 와서 아이랑 한참을 놀아주고 잠도 재워주었다. 덕분에 다음 날까지 모처럼 여동생과 긴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었다.

연고 없는 도시에 와서, 여동생도 나도 나름대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돌이켜 보면, 이 낯선 도시에 자리잡기까지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여동생도 사는 곳이나 직장을 여러번 옮기며 마음 고생을 하기도 했고, 나도 그랬다. 한 때는 여동생과 꽤 멀리 살아서 보기가 쉽지 않았지만, 비교적 근거리에 살게 되면서는 종종 만나기도 했다. 아이는 고모랑 엄마 중 누가 좋냐고 하니, 똑같이 좋다고 했다(아빠는 당연히 고모 다음이란다).

사실, 요 며칠 동안 여동생이 한 말과 꼭 같은 말을 몇 번 들었다. <그럼에도 육아> 북토크라든지, 인터뷰라든지 하는 곳에서 늘 일상을 따뜻하게 쓰는 것에 감명받는다는 이야기를 전해준 분들이 있었다. 특히, 얼마 전 차를 몰고 북토크를 갔다 돌아오는 길에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 삶에 소명이 있다면, 나는 이 삶을 충분히 느끼고 표현하는 일일까.'하고 말이다. 만약 누구에게나 자기에게 주어진 소명이라는 게 정말로 있다면, 나는 이 삶을, 이 세상을 매일같이 충분히 느끼는 것이 소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그냥 문득 하게 되었던 것이다.

세상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다들 벅찬 현실과 바쁜 인생에 휩쓸리느라 오늘 하루를, 삶을, 세상에 떨어지고 있는 햇빛을, 어느덧 도래한 계절감을, 곁에 있는 사람의 소중함을, 나를 위한 마음들을 잊는 것 같다고 느낄 때가 많다. 얼마 전에는 <그럼에도 육아>를 읽고, 육아를 대하는 태도가 180도 바뀌었다는 리뷰를 읽었는데, 그저 힘들기만 하다고 생각했던 시간이 너무도 소중한 것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사실, 이 책이 출간된 뒤 비슷한 리뷰를 너무 많이 읽었다. 사람에게는 마음의 태도가 정말 중요할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모든 게 돈, 환경, 조건 같은 '외적인 것'으로 환원되는 게 당연한 세상이고, 반면 마음의 힘, 태도, 삶과 세상을 바라보는 내면의 역할 같은 것은 아무짝에도 쓸모 없다고 말하는 게 요즘 세태다. '마음의 힘도 중요해요.'라고 하면, 그건 서울에 아파트 있는 사람한테나 중요하겠죠, 라는 대답이 어렵지 않게 돌아올 수 있다. 그러나 지난 날들을 돌이켜 보면, 적어도 내게 가장 중요한 건 마음의 힘이었던 것 같다. 지독한 수험 생활 시절, 집안에도 어려움이 닥치고, 어느 하나 내게 호의적인 것이 없다고 느꼈던 때일수록, 나는 마음이 해낼 수 있는 걸 믿고자 했다.

돌이켜 보면, 나는 마치 내게 주어진 이 생의 의무처럼, 신이 새겨놓기라도 한 사명처럼, 오래 전 누군가 심어 놓은 소명처럼, 매일 밤마다 나의 하루를 다시 느끼며 글을 쓰려고 했던 것 같다. 세상의 온갖 말들, 벅찬 현실들, 타인들의 시선과 나를 괴롭히는 강박 속에서도, 내 삶에 주어진 작고 소중한 것들을 따뜻한 이야기로 만들고 싶었다. 어쩌다 보니, 내 삶에 초대하게 된 어린 아이와 아내와 그밖의 다른 모두를 조금은 더 다정하게 바라보고 싶었다. 그것은 곧 내 삶을 위한 위로이기도 했다. 그런 것이 누군가에게 닿았다고 생각하면, 나는 이 삶에서 해야할 일을 했다는 느낌이 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