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는 아이가 단 하나의 원칙만 배우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무엇이든지 "노력하면 잘할 수 있다."라는 것이다. 가을이 오고, 나는 아이에게 축구든 배드민턴이든 매일 가르치려고 한다. 그러면서 매일 빼놓지 않고 하는 말이 이것이다. "뭐든 계속하면 잘하게 돼. 잘하게 되면 얼마나 재밌는지 몰라." 아이는 그 말을 믿고 곧잘 따라온다.
배드민턴 서브는 커녕 공을 맞출줄도 모르는 아이는 며칠만에 제법 서브도 해내고, 공도 받아내게 되었다. 아이랑 한 번 배드민턴을 시작하면, 밤까지 공을 100번은 주웠다가 다시 친다. 아이는 지칠 줄 모르는 투지랄 것을 보여준다. 나는 계속 아이를 응원한다. "좋아! 잘했어! 계속 하다보면 이렇게 잘하게 되지? 벌써 어제보다 훨씬 잘하게 됐네!" 이런 말들에 아이는 신나서 계속 공을 친다.
나에게는 의무가 있다. 아이가 자전거도, 인라인 스케이트도 잘 타게 할 의무가 내게 있다. 아이가 축구도 제법 해내고, 배드민턴도 칠 줄 알고, 캐치볼도 할 줄 알게 하는 의무도 내게 있다. 나는 자고로 그게 아빠의 역할이라 믿고 있다. 삶을 헤쳐나갈 수 있는 기본적인 능력을 가르쳐야 한다. 마치 아기새에게 나는 법을 가르치고, 새끼사자에게 사냥을 가르쳐야 하는 것처럼, 나는 아이에게 노력의 가치를 알려주고, 무언가를 '잘하게 되는 과정'의 느낌과 실제로 잘하게 되었을 때의 '성취감과 즐거움'을 가르쳐야 한다고 믿는다.
이제 간신히 배드민턴 한 두번 받아내지만, 아이랑 그러고 있으면 매번 주변 다른 아이들이 몰려 온다. 아이들은 대개 10살 내외인데, 벌써 어른만큼 배드민턴을 잘치는 아이들도 있다. 그런 아이들을 보면, 나를 바라보며 열심히 배우려하는 이 꼬마의 실루엣이랄 것도 이제 몇 년 안 남았구나 싶다. 10살 된 아이들이 어찌나 커보이는지, 고작 몇 년 뒤 아이의 모습이 그렇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그러나 믿기지 않는 바로 그런 모습이 되어야만 한다. 자기의 나이에 걸맞은 존재가 되어야 한다.
아이는 자기가 자란 이 동네에서 점점 세상을 꿈꿀 것이다. 저 수평선 너머에 있을 나라들, 세계에서 맞이할 경험들, 언젠가 만날 사랑하는 사람도 생각해보게 될 것이다. 꿈을 상상하고 믿고 나아가는 존재로 커나갈 것이다. 나는 그런 존재에게 배는 못 만들어주더라도, 노를 저을 수 있는 힘과 북극성을 볼 줄 아는 지혜와, 별을 따라 나설 수 있는 마음을 주어야 한다. 아이는 그 마음으로 평생을 살아갈 것이다. 내가 어머니에게 그림을 배우고, 아버지에게 자전거를 배워서, 어른이 된 것처럼 말이다.
칼릴 지브란은 아이란 화살이고 부모란 활과 같은 존재라고 했다. 지금은 화살이 아직 발사되진 못한 채 만들어지고 있고, 활과 뒤엉켜서 꽁냥꽁냥 사랑하고 있는 시절이다. 화살이 아직 발사되길 바라지 않으면서 활 곁에 꼭 붙어 있으려 하고 있다. 나는 그런 화살이 미처 눈치채지 못하게, 곁에서 화살촉을 갈아주고, 화살깃을 다듬어주고, 화살대를 곧게 두드리고 있다. 아이에게 가르쳐야 할 것들이 있다. 아이에게 주어야 할 것들이 있다. 나의 시절은 그렇게 쓰인다. 나는 어두운 밤, 가로등 아래에서 처음으로 배드민턴 서브를 해내던 꼬마의 앞니 빠진 미소를 기억할 것이다. 나만이 기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