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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우 Feb 17. 2021

시작이 반, 중간의 견딤


나는 개인적으로 '시작이 반'이라는 말을 무척 신뢰하는 편이다. 그런데 그에 못지 않게 '중간이 가장 넘기기 어렵다'는 것도 자주 느낀다. 무엇이든, 언젠가 하고 싶었던 마음을 기억하고 있다면, 일단 시작하는 게 어려울 뿐, 시작하고 나서는 시작이 주는 힘에 이끌려가게 된다. 그러나 시작이 반이라는 말은, 달리 말해, 이제 나머지 반은 '시작의 힘' 없이 스스로 이끌고 가야한다는 걸 의미하기도 하는 듯하다. 


시작이 가장 어렵다곤 하지만, 어떻게든 일단 시작하고 나면, 중간을 넘기기가 또 만만치 않다. 대개 중간쯤 이르러서 포기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어떤 일이든지 대개는 그 나름의 성과나 결과랄 것이 제대로 나오려면, 시간이 걸린다. 중간까지는 아무런 성과가 없을 수도 있고, 성취감이나 노력의 결과가 전혀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다보면 이제 슬슬 '포기할 타이밍'을 재게 되는데, 사실 그때쯤이 비로소 결과라는 게 만들어질 수 있는 토양이 겨우 마련될 시점일 가능성이 높다. 


인내심이나 끈기가 있다는 것은 사실 스스로를 의심하지 않는 능력에 가깝다. 이것 봐, 나는 안되잖아. 역시 아무 의미 없잖아. 내가 그렇게 힘들게 시작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아무것도 없잖아. 나는 맞지 않는거야. 이런 의문들이 쏟아질 때, 그냥 믿고 계속하는 것이다.  그렇게 '중간'을 넘기고 나면, 서서히 노력의 의미랄 것을 조금씩 만나게 된다. 이해되지 않던 것들이 이해되고, 통합되고, 응용된다. 예전에는 불가능했던 것들이 가능해 보인다. 여러가지 의미에서의 반응이랄 것을 조금씩 경험하게 된다. 그러면 또 구부능선까지는 달릴 수 있게 된다. 구부능선까지 달리면, 대개 마지막까지 가게 된다. 


결국 많은 일에서 핵심은 '중간'을 어떻게 견딜까 하는 것이다. 이 중간의 지옥을 이겨내는 경험을 여러번 하다보면, 어떤 일에서든 슬슬 '중간의 지옥이로군.'하는 걸 느끼게 된다. 마찬가지로 이 중간의 지옥을 지나고 나면, 달릴 수 있느 평야가 있다는 것도 믿게 된다. 사실, 그 중간의 지옥에서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하나밖에 없는 것 같다. 마음 속에 어떤 의심이 들고, 의욕상실의 늪을 헤매는 것 같고, 절망감이나 좌절감이 앞설 때도 그냥 하는 것이다. 다른 걸 생각하지 말고 그냥 하는 것이다. 중간의 지옥을 빠져나오는 유일한 방법은, 그냥 하는 것이다. 


뭐랄까, 삶에서는 어떤 일이 과연 내게 어울리는 것인가, 나의 일이나 나의 길인가, 내가 올바른 선택을 했는가를 알기 어렵고, 그래서 늘 선택의 고민에 빠지게 된다. 그런데 적어도 어떤 일이든 '중간의 지옥'을 지나보지 않으면, 그 일이 나에게 어울리는지조차 알 수 없는 경우가 많을 거라 생각한다. 적어도 중간의 지옥을 지나고 나서, 그것이 만들어내는 결과나 반응 속에서, 이 일이 내게 어울리는 것이었는지 아닌지도 비로소 알게 되곤 하는 것이다. 어떤 일을 시작조차 하지 않으면 물론, 중간의 지옥을 지나지 않고서는, 내 삶에 가장 어울리는 방식들을 찾아낼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모든 일에서, 슬슬 중간의 지옥이 왔다고 느끼면, 이제 곧 이 일의 정체를, 나와의 관계를 곧 알 수 있으므로, 이것을 반드시 통과해야만 한다고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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