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게임2>의 첫 화에서 본 딱지맨(공유)의 모습이 며칠간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광기어린 연기에 깜짝 놀라기도 했고, 그 역할의 의미에 대해 계속 생각해보게 된다. 성기훈(이정재)과 딱지맨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내기를 한다.
두 사람은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음에도, 목숨을 건 러시안룰렛 게임을 한다. <오징어게임>에서 이루어진 게임들이 대부분 참가자들을 강제로 특정 공간에 가둬놓고 생사결을 하게 하는 것이라면, 이 두 사람의 게임은 그와 완전히 궤를 달리한다. 그들은 아무도 강요하는 것도 없이 그냥 목숨을 걸고 게임을 하기로 한 것이다.
달리 말하면, 그들은 목숨을 걸고 게임의 규칙에 자발적 복종을 한다. 목숨보다도 게임의 규칙을 더 중요하다고 믿어버린 것이다. 그들이 믿는 건 서로가 아니다. 그들이 믿는 건 게임이고, 게임에 대한 복종이다. 특히, 게임의 거의 마지막에 이르렀을 때, 성기훈은 50 대 50의 확률 앞에 선다. 이대로 자기 머리에 방아쇠를 당기면 반의 확률로 죽게 된다. 그 때 딱지맨은 말한다. 그 총으로 그냥 나를 쏴보라고 말이다.
그러나 성기훈은 그렇게 해서 목숨을 확실히 부지하기 보다는, 그냥 게임에 복종하길 택한다. 마지막은 더 충격적이다. 이제 100%의 확률로 방아쇠를 당기면 죽는 상황에서 딱지맨은 자기 머리에 대고 방아쇠를 당겨버린다. 그는 그 복종을 거부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규칙에 대한 복종이 너무도 강렬한 나머지, 자기 목숨보다도 그 맹신이 더 중요했던 것이다.
내가 여기서 떠올린 건 사회적 명예가 실추당하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권력자들이었다. 그들은 사회적 지위가 곧 자기 자신이라고 믿기 때문에, 그 수치심과 추락을 견디지 못하고 목숨을 끊는다. 그것은 인간이 눈앞의 오늘 하루보다, 언제나 자기 '머릿속'의 무언가에 더 무게를 두고 살고 있다는 걸 의미하는 듯하다. 인간은 자기 관념 안에서 살고, 그 관념에 복종과 맹신하며, 그 관념을 잃는 것을 죽기보다 두려워한다.
게임과 규칙을 믿고 그것을 만들어가는 일원 중 하나인 딱지맨은 그 게임에서 패배한 자신의 가족도 총으로 쏘아 죽인다. 결국 자기 자신도 죽인다. 그는 이 무의미한 삶에서, 어디에 기준을 두고 하루하루를 살아야할지 알 수 없는 이 허무하고 불안한 삶에서, 자기에게 부여해준 규칙을 믿었다. 그 규칙에 따라 사람들을 그냥 죽이면 고민도 없이, 손쉽게, 속 편하게 살 수 있었다. 그는 게임과 규칙, 관념의 화신이다. 그것을 잃을 바에야 스스로 죽는 게 더 낫다고 믿었다.
<오징어게임>은 사실 이 규칙을 향한 맹목성에 대한 저항을 다루는 면이 있다. 우리 모두가 복종하는 규칙, 돈에 따라 인간을 죽이거나 살리는 사회의 규칙, 그 속에서 떨어져 나가면 절망적인 박탈감을 느끼도록 만들어진 이 사회적 삶의 규칙 바깥에서도 인간은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지를 다룬다. 그 여백에 대한 사유를 열어젖힌다는 점에서, 이 작품을 성찰해볼 가치가 있다. 인간에게 하나의 의무가 있다면, 관념 때문에 타인에게도, 자기 자신에게도 방아쇠를 당기지 않을 의무일 것이다. 대신 그 촘촘한 관념적 그물망을 뚫고 나와, 한 명의 살아있는 생명체로서 이 삶에 대한 사랑을 찾는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