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에는 복권보다는 빵을(feat.오징어게임2)
<오징어게임2>의 첫 화에는 노숙자들이 잠시 나온다. 이야기에서 중요한 부분은 아니지만, 내게는 상당히 인상적인 데가 있었다. 그들에게는 선택지가 주어진다. 일용할 양식을 얻을 것인가, 아니면 거의 가능성이 없는 대박에 배팅해볼 것인가, 라는 선택지다. 노숙자들 대부분 당장 배를 채워줄 빵 대신 사실상 당첨될 가능성이 거의 없는 복권을 택한다.
사실, 그들에게 빵은 필요하지 않았다. 일용할 양식, 즉 한 끼의 식사라는 것은 그렇게 얻은 에너지를 통해 무언가를 실천할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다. 몸을 일으켜서 삶을 헤쳐나가며 자기의 일을 할 사람에게는 빵이 필요하다. 몸을 데우고 뇌를 돌게 할 열량이 필요하다. 빵은 그것을 연료로 삼아 불태워 오늘의 삶을 만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힘을 믿지 않는 이들에게는 빵이 필요없다. 대신 그저 삶을 단번에 바꿔줄 망상만 있으면 된다. 가만히 앉거나 누워서 긁기만 하면 당첨되어 삶을 바꿔줄 대박에 대한 공상만 있으면 된다. 그러나 그것은 삶을 만드는 일이 아니다. 삶을 허공에 다시 흩어버리는 일이며, 백일몽 속에 삶을 버려두는 일에 불과하다.
삶이란 본질적으로 매일 '일용할 양식'을 지향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할 일이란, 오늘치의 일을 하고 하루치의 양식을 얻는 것이다. 이 매일의 순환을 잊으면 안된다. 모든 건 하루치의 것들에 달려 있다. 하루치의 일, 하루치의 사랑, 하루치의 운동 같은 하루치의 것들이 결국 허공이 아닌 단단한 대지와 같은 삶을 만들어나간다.
아마도 세상에는 이 '하루'를 믿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는 듯하다. 내가 하루하루 문제집을 풀면 언젠가 공부에서 성취를 거둘 수 있을 거야, 내가 하루하루 운동을 하면 언젠가 몰라보게 건강한 몸을 갖게 될거야, 내가 하루하루 글을 쓰면 언젠가 그것들이 모여 책이 될거야, 라고 믿는 사람이 있다. 반면에, 냉소와 회의, 체념에 둘러싸여 하루들에 대한 신뢰를 읻은 사람도 있다. 전자는 빵을 택하고, 후자는 복권을 택한다.
삶에는 과대망상이나 대단한 열정이 필요한 건 아닐 수 있다. 오히려 열정도, 공상도, 대단한 희망이랄 것도 없이, 그저 매일 자리에서 일어나 빵 하나를 집어 먹고 나의 일을 시작할 수 있는 힘이 있다면 족한 건 아닐까 생각한다. 세상에는 일하는 사람의 마음이 있고, 반대로 복권 당첨을 꿈꾸는 사람의 마음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일하는 마음을 가진, 하루의 일을 해내기를 주저하지 않는, 하루하루를 실체 있는 삶으로 만들어가는 사람이고 싶다고 생각한다.
팔다리가 움직이는 몸과, 투명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을 믿으며 내가 하루를 이어갈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한다. 필요한 건 456억이라는 과대망상적인 꿈이 아니라, 그것을 꿈꾸지 않을 수 있는 마음이다. 오늘 하루치의 걸음을 걸을 수 있는 마음, 그것들로 새해의 하루하루가 또 채워지길 바라본다. 그렇게 365일이 채워지고 나면, 365억을 꿈꾸느라 허공에 바친 날들보다, 더 나은 삶을 만들어두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