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는 이룰 수 없는 꿈이 있다. 아무런 사건사고 없이, 그저 영원히 평안한 일상만이 있길 바라는 꿈이다. 삶이란, 그런 꿈이 이제 막 이루어진 것 같아가도, 곧이어 예상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진다. 마치 신의 저주라도 받은 듯, 갑자기 자동차가 고장나고, 방충만이 찢어지고, 거래처에서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머피의 법칙'이 적용되는 날들은 잊을 만하면 나타나기 마련이다.
흔히 '삼재'라고 하여, 12년 주기로 누구에게나 찾아온다는 3년짜리 재앙이 있다. 사실, 그 신빙성은 도무지 믿기 어렵고, 사주를 전문적으로 보는 사람들조차 크게 중요치 않다고 하기도 말한다. 다만, 이것은 누구에게나 10년에 한 번쯤은 크게 슬퍼하거나 좌절할 만한 일이 온다는, 조상들의 지혜를 담은 이야기 같은 게 아닐까 싶다. 누구도 12년 동안 아무 사고 없이 평안할 수는 없다. 12년쯤 지났으면, 사건사고가 일어날 때도 된 것이다.
그래서 삶이 내게 무례하게 구는 것 같을 때면, 그저 마땅히 인간 삶에 일어날 법한 일이 일어났구나,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얼마 전 아내가 말했다. "오늘 유난히 우울하면, 그만큼 어제 기분이 좋았던거래." 듣고 보니 과연 그렇다. 조증에 걸린 것처럼 기분 좋은 날들만 줄곧 이어진다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일 듯하다. 오늘 짜증나고 울적하고 축 처진다면, 그만큼 어제 행복했기 때문일 수 있다. 어제가 아니라면, 얼마 전 너무 '괜찮은' 일주일을 보냈던 건 아닌가? 그렇기에 꽤나 '다운'되는 일주일을 보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어떠한 경우에도 "삶을 저주"하지 않는 것이다. 혹은 비관에 사로잡히지 않는 것이다. 내 삶은 저주받았기에 더 절망적인 나날들이 기다리고 있다고는, 결단코 믿지 않는 것이다. 대신 해야할 건 오늘 일어날 일들이 내게 오만을 경고하고, 겸손을 가르치고자 했던 삶의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세상 모든 이들이 저마다의 불행들을 견디며 어른이 되어 왔다는 것을 이해하며, 타인을 연민하고, 이해하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모든 어른들이 그러했듯, 나도 어른이 될 수 있을 거라 믿는 일이다.
어른이 되어갈수록 좋은 점은, 타인의 고난을 조금 더 이해할 줄 알게 되어가는 게 아닐까 싶다. 머리로만 알았던 인생은 피와 살이 되어 다가온다. 세상 모든 어른들이 내가 겪은 그 무수한 나날들과 고민들, 나아가 그 이상의 어려움들을 이겨내왔다는 걸 생각하면, 인간에 대한 어떤 숭고함이 생긴다. 사람은 그 지난한 세월을 견뎌냈다는 것만으로도, 존중받을 만한 면이 있다.
나의 부족함을 매번 다시 한 번 느끼면서, 다시 내일로 가려고 한다. 내가 하루 더 인내하며 의연할 줄 아는 인간이 되길 바라면서, 역시 내일로 갔으면 한다. 하루치의 의지를 머금고, 그저 하루를 조금 더 나은 마음으로 잘 이겨냈으면 한다. 대개 삶이란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다. 신선이 되기 전까지는, 혹은 천국에 도달하거나 해탈에 이르기 전까지는, 이 중생으로서의 삶이란, 역시 하루 견뎌낼 마음, 일용할 마음이 있으면 족한 것이다. 오늘 조금 어려웠으니, 내일 조금 평안할 것이다. 그렇게 한뼘 더 어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