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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릴 적 바라보았던 그 어른들

by 정지우


어린 시절의 왁자지껄함이 생각난다. 엄마도 아빠도, 이모도 이모부도 모두 젊었던 날들. 사촌들을 만나면, 사흘 내내 놀 생각 뿐이었다. 노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레고를 만든 다음에는, 나가서 축구를 하고, 그 다음에는 게임을 하자. 밤이 새도록 잠도 자지 말고 거실에 다같이 누워서, 카드놀이를 하자. 그렇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시간을 놀고 나면, 헤어지는 걸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어 펑펑 울었다.


생각해보면, 내가 지금 살아갈 힘이 그 시절 삶을 사랑했던 시간들에 뿌리내리고 있다는 걸 깨달을 때가 있다. 밤새 놀았던 어린 날들, 삶을 너무 사랑해서 어쩔줄 몰라했던 날들, 그런 날들이 내 삶의 뿌리가 되었다.


우리가 놀고 있으면, 어른들은 어딘가 나갔다 오곤 했다. 오랜만에 맥주도 마시고, 노래방도 갔다 오고 하는 듯했다. 그 시절 그 어른들의 나이가 꼭 지금의 내 나이와 같다. 그렇구나, 내 어린 시절, 내 인생의 황금기,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밤들이 있던 그 시절에, 나의 어른들 역시 황금기를 보내고 있었을지도 모르겠구나, 생각한다. 그러니, 지금의 나는 황금기구나, 하고 말이다.


내가 어릴 적 바라보았던 그 어른들은 은퇴하기도 했고, 큰 수술을 하기도 했고, 세상을 떠나기도 했다. 내가 어느덧 어른이 된 만큼, 나의 어른들 역시 세월을 따라 흘러갔다. 그래서 생각하는 건, 이 시절을 참 소중히 해야겠구나, 하는 것이다. 값진 시절이다. 놀기 좋아서 깔깔대는 아이가 있는 시절, 젊은 마음으로 꿈을 품고 어디로든 나설 수 있는 시절, 아직 생을 시작하고 있는 시절, 부서지거나 망가지더라도 일어날 수 있는 시절, 이 시절의 힘을 사랑해야 한다.


바다를 보면 있는 힘껏 수영하고, 아이가 달려오면 있는 힘껏 안아주고, 사랑할 기회가 있다면 역시 있는 힘껏 사랑해야 한다. 그러고 나면, 이 시절 역시 저물 날이 올테니, 후회 없이 한 시절과도 작별을 고해야 할 것이다. 생이 저물어갈 때, 어떤 마음일지는 모르겠지만 다만 내가 저 어린 날을 떠올릴 때처럼, 그토록 원없이 내게 주어진 하루들을 사랑했노라고 믿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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