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를 마감하는 해가 되어 돌아보니, 지난 10년을 잘썼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나는 이 한 시절을 아이와 함께하는 데 썼다. 거의 모든 주말, 그리고 거의 모든 저녁을 아이와 있었다. 나는 돌이킬 수 없는 30대, 다시 살 수 없는 30대, 일생에 한 번 뿐인 30대의 절반 이상은 아이와 사는 데 썼다. 그것만큼 이 삶을 잘 썼다고 느끼게 하는 일이 별로 없다.
삶은 두 번 살 수 없고, 20대도, 30대도 역시 한 번 밖에 살 수 없다. 그 아까운 시간을 무엇으로 쓸 것인가, 하는 결정이야말로 인생에서 가장 중대한 일일 것이다. 20대의 나는 꿈을 찾고 좇는 데 썼던 듯하다. 30대의 나는 아내와 만든 가정, 아이와 셋이서 살아가는 삶을 잘 가까우는 데 상당 부분을 썼다. 완벽하진 못했고, 시행착오도 많았지만, 그래도 그런 데 쓰길 잘했다는 확신이 든다.
나의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면, 아이가 아내의 배 속에서 내밀던 발바닥부터 생각이 난다. 그리고 아이가 태어나고, 기어다니고, 웃고, 걷고, 뛰던 날들이 찬찬히 생각난다. 그런 날들이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날들이 없었다고 생각하면, 허전했을 것 같다. 좌충우돌하면서도 그 시간을 잘 이겨냈고, 쌓아와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죽더라도 나의 30대에 큰 여한은 없다. 나는 나의 삶을, 마음을 다해 살았다.
다른 하나는, 그 와중에 이 사회에 부지런히 자리잡기 위해 애썼다는 점도 떠오른다. 수험생활을 하고, 자격증을 따고, 취업을 하고, 그러면서도 계속 글을 썼고, 그래서 간신히 1인분 하는 사회인이 되었다. 10년 전, 그러니까 스물아홉을 생각해보면, 장족의 발전이다. 당시만 해도, 나는 딱히 사회에서 1인분 하는 인간까지는 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 사이에, 1인분쯤은 하는 인간이 되었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30대를 잘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여러 일들로 마음도 단단해졌다. 이제는 어지간한 일이 일어나도 견딜 수 있는 심지도 조금은 생겼다고 느낀다. 이 정도면 이제, 인생의 절반까지 잘 왔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 나의 40대는 어떠할까, 생각도 해본다. 모르겠지만, 20대와 30대가 달랐듯, 40대도 크게 다를 것이다.
아이는 부쩍 자랐을 거고, 사회에서 1인분도 하게 되었을 텐데, 그 다음에는 무엇이 있을까? 흔히 그렇듯 엄청난 대박이나 성공을 꿈꾸진 않는다. 40대가 되었다고 해서, 갑자기 대단한 베스트셀러가 되거나 엄청난 유명인이 되거나 갑자기 돈방석에 앉을 것 같지도 않다. 나는 그런 건 내 삶에 없는 일이라 믿고 있다. 그보다는 죽기 전에 해외에서 한 번 살아보거나,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일로 삶을 단단하게 만드는 일이 있다면 어떨까, 기대해보긴 한다.
20대 때의 나는 30대의 내가 육아하며 라이센스 따고 직장 출퇴근하고 그러다 다시 독립하여 사는 그런 사회인이 될 줄은 몰랐다. 마찬가지로 30대의 나도 40대가 내가 어떨지 모른다. 다만, 역시 그 모르는 마음으로, 내가 한 번 뿐인 삶에서 후회 없는 도전이나 모험 같은 걸 해볼 수 있어도 좋을 듯하다. 하다못해 동네 골목에 책방을 차려보는 일 정도도 있을 수 있지 않을까. 아니, 어쩌면 포르투갈에 가서 책방을 차릴지도 모르지.
앞으로의 10년도 '잘 썼다'고 믿을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 그게 어렵다는 걸 알아서, 더 그렇게 살고 싶다. 역시 49살에 지난 10년을 돌아보면서, 그래, 후회없이 살았네, 하고 말할 수 있었으면 한다. 역시, 이렇게 40대를 살았다면 죽어도 좋아, 하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