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가 이어지려면 삶이 필요하다. 삶 속에서 극심한 답답함을 느끼든, 간절한 꿈과 희망이 있든, 삶이 절실하게 이어져야만 글쓰기도 이어진다. 그러나 삶이 정체되어 있고 명료한 의지가 없으면 글쓰기도 멈춘다. 반대로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일구고, 절실하게 싸우고, 간절하게 꿈꾸고 있다면 글도 그런 마음의 힘을 받는다.
나 역시 스무 살 무렵부터 글을 쓰며 여러 굴곡을 지나왔고, 가장 많은 글을 썼던 순간들은 가장 간절할 때였다. 예를 들어 수험생 시절처럼 답답한 현실 속에서는 더 적은 시간과 여력 속에서, 더 절박하게 가장 많은 글을 썼다. 직장 생활을 할 때도 정해진 출퇴근에 묶여 있을수록 글 속에서 자유를 찾았다. 최근에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도 내 삶을 자유롭게 이끌어야 하는 상황이 되자 뚜렷한 의지를 담은 글들을 많이 썼다.
하지만 퇴사한 지 2년 가까이 되다 보니 삶이 관성에 젖은 듯 흘러가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적당히 만족하는 나날들, 행복한 시절을 보내는 나날들 가운데, 절실하게 글쓰기를 짜낼 필요성이 다소 줄어들 때가 있다. 삶을 좀 더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 확신이나 반대로 완전히 손발이 묶여 있다는 느낌 속에서 글쓰기는 더 잘 펼쳐진다. 결국 글쓰기를 위해서도 삶을 더 잘 살아야만 한다.
그렇다고 일부러 삶을 극단적으로 만들 필요는 없지만, 새로운 지평으로 올리는 도전들은 계속 이어져야 한다. 그것이 좋은 글을 쓰는 하나의 방법이라는 게 흥미롭다. 실제로 좋은 글쓰기는 좋은 삶을 향한 더 생기 있고 공감 넘치는 지향을 담고 있다. 요즘 막연히 상상하는 것은 둘째가 태어나거나 해외에서 살아보는 것이다. 삶에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것 같지만, 좋은 삶은 많은 것을 바라야 가능하다.
그것은 꼭 거창한 부를 바란다든지, 혹은 대단한 명예를 바란다는 것과는 다소 다른 이야기이다. 나는 나의 삶에 속해 있고, 내 삶에 더 많은 것을 바랄 권리가 있는 것이다. 그 많은 것이란, 이 삶을 더 깊고, 더 진정하고, 더 진실된 의지를 가지고 더 아름답게 누리고자 하는 일이다. 이것이야말로 삶에 대한 진정한 욕심이라 할만하다. 너무나 쓰고 싶은 말들로 넘쳐나는 삶, 아직 죽지 않은 마음, 그래서 간절한 추구들과 열망들로 들끓는 바로 그런 삶을 향한 욕심이다.
삶에도 천재가 있다면 그런 욕심을 잊지 않는 것이라 생각한다. 한정된 시간을 써야하는 이 삶이라는 소비재를 어떻게든 값지게 쓰고자 애쓰며 실제로 그렇게 살아내고야 마는 마음, 그런 마음들이 가득할 때, 나는 삶의 주인이 되고 매일 쓰는 삶을 살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