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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하고 각박한 삶을 건너는 법

by 정지우

연애 때 나는 아내가 나를 특별한 사람으로 여겨주는 게 좋았다. 당시 나는 스스로 생각할 때 별 볼 일 없는 인간이었다. 서른을 한 해 앞두고 있었고, 대학원은 2년간 다녔지만 학위는 포기한 채 나온 상태였다. 뒤늦게 취업을 하겠다며 영어학원과 취업 스터디를 다니고 있었는데, 소속이 사라지면서 주변은 텅 비어 있었다. 가족 없는 서울에서 혼자, 나는 그저 글쓰기 하나에 기대어 삶의 가장 불안정한 시기를 건너고 있었다.

돈도 없고, 소속도 없고, 경력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채 서른을 맞이하는 입장 같은 것이었지만, 아내는 나를 무척 '특별한 사람'이라 생각해주었다. 자신의 어릴 적 꿈은 작가였는데, 자기는 주변에서 작가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면서, 오히려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은 사람들보다 나를 더 좋아해주었다. 생각해보면, 내가 아내를 좋아하는 측면과는 별개로, 그것은 내게 무척 큰 위안이자 힘이 되었던 것 같다.


그 때를 생각해보면, 책을 몇 권 내긴 했지만 딱히 세상에서 나를 찾는 사람도 없고, 나도 이 세상에 무엇으로 존재하는지 모르는 그런 입장이었다. 책도 딱히 잘 팔리지도 않았고, 강의 자리도 없었고, 이대로라면 나는 그냥 '글쓴다'며 객기 부리다가 초라하게 늙어버릴지도 모른다, 하는 불안감에 지배당하던 때였다. 그런 시절에, 내가 볼 때는 너무 예쁘고 부족할 것 없는 한창 때의 젊은 여자가 나를 특별하게 여겨주며 사랑해주니 어쩐지 용기가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시작했던 둘의 삶이 어언 10년이 지났다. 나는 신이 삶을 이겨내고 어른이 되든 데 쓰라고 준 젊음의 힘을 지난 10년간 남김없이 다 썼다. 수험생활을 하면서 육아를 하고, 학비를 벌고, 서울로 돌아와 최저시급 받으면서 수습 생활을 1년여간 마치면서도, 악착같이 글쓰기를 놓지 않았고, 아이가 깨어있는 시간은 아이 곁에 있으려 노력했다. 취업 원서를 부지런히 썼고, 지옥철을 지나 출퇴근하며 미래를 항상 생각했고, 열심히 돈을 모아 이사를 갔고, 흙바닥에서부터 돌을 쌓아 올려 우리의 탑을 만들었다. 부족한 것은 믿음과 용기로 채워왔고, 이제는 중년의 문턱에 서 있다.


그 모든 걸 무엇으로 해냈냐 생각해보면, 아무래도 사랑이 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사랑으로 불안을 치료하고, 아이가 태어나면서는, 역시 아이를 사랑하고 지키는 마음으로 매일을 채워왔다. 사랑하는 사람이 주는 마음,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고자 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그 세월을 무엇으로 이겨냈을까? 한 때 나의 습관은 혼자 '죽고 싶다.'를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돌아다니는 것이었는데, 그러다가도 사랑하는 존재 앞에 서면 그런 생각은 눈꼽만큼도 나지 않았다. 가장 힘들다고 느낄 때는 손바닥 안에 들어오는 아이의 작은 발바닥을 움켜쥐고 잠들기도 했다.


각박하고 잔인한 세상이라고들 하지만, 그래도 이 시대에도 삶을 건널 방법은 있다. 그것은 인류가 가장 잘 아는 방법이고, 어느 시대에나 통용되던, 검증된 방법이다. 바로 사랑하는 것이다. 이 진리는 아마도 인류가 화성으로 이주하거나, 안드로메다에 웜홀로 관광 다닐 때가 되어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삶을 건너려면, 사랑을 하면 된다. 그러면 막막해보이거나 불가능해보이는 여정도 가능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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