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두어달을 돌아보니, 친구를 만난 날이 없다. 그러면서 과연 생각해보니, 내게는 정말 친구가 없긴 없구나 싶었다. 아내는 친구랑 술도 마시고, 일본 여행도 다녀오지만, 나에게는 역시 그럴 친구가 없다. 아내에게 문득 그 사실을 깨닫고 얘기했더니 그렇게 말했다. "친구는 그만큼 시간을 쌓아야 있는 건데, 당신은 대신 20대에 고독을 택하고 혼자 글을 썼잖아. 그래서 지금의 당신이 된 거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었지만, 아내가 그렇게 말해주니 좋았다.
삶에는 택한 것이 있으면 택하지 못한 게 있다. 사실, 지금 내 삶의 모습은 오롯이 내가 보낸 20대의 결과이기도 하다. 사람보다 나는 문학과 철학, 글쓰기를 택한 10년을 보냈다. 그 시절의 친구는 거의 한 명도 남아있지 않다. 간간이 만나는 그 시절 친했던 동생 한 두 명 정도가 있지만, 나머지와는 모두 멀어졌다. 내게는 나의 글쓰기와 진리 탐구가 너무 중요했고, 그래서 친구에게 시간도, 마음도 쓰지 못했다.
비교적 최근에는 '사람'의 중요성을 깨닫고, 사람들에게 시간도 쓰고 서로에게 좋은 관계를 남기려 노력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말 '친구'라고 할 만한 사람을 사귀는 건 쉽지 않다. 가까워진 사이가 있지만, 매번 시간을 내서 주기적으로 만날 수 있는 '친구' 같은 존재를 한두명 이상 사귀기가 나에게는 참 어려운 것 같다. 동네 아이 엄마들과 벌써 친구처럼 지내는 사람을 잔뜩 사귄 아내에 비한다면, 극단적 대조를 이루는 내 삶을 매번 반추해보곤 한다.
그러다 문득, 내가 누구와도 시간을 보내지 않는 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생각해보니,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을 제외한 거의 대부분 시간을 가족과 보냈다. 아이 방학을 맞이하여, 아이랑 정말 오랜 시간 있었고, 여동생도 네다섯번은 만났다. 부모님이랑 장인장모님도 만났다. 내 삶은 친구보다는 가족이었다. 어릴 때도, 나의 가장 친한 친구는 여동생과 사촌형, 사촌동생이었다.
언젠가 북토크에서 나의 30대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30대 대부분을 가족에게 썼다는 걸 깨달은 적이 있다. 퇴근하고 회사동료나 친구들과 술 한잔 나눈 적 자체가 거의 없었다. 거의 모든 저녁, 거의 모든 주말을 가족과 보냈다. 애초에 그것이 내 삶의 가치관이고 취향이라는 걸 알았다. 내가 쓴 글들에는 친구가 없다. 가족 에세이, 혼자 사유하는 에세이만 한 가득이다. 그것이 내 마음의 바운더리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최근에는 의식적으로 사람을 '남기는' 일에 애써오기도 했다. 스쳐지나갈 수 있었던 여러 인연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기도 했고, 함께 글쓰는 사람들과 끊임없이 프로젝트를 함께하고, 꼭 '절친'까지는 아니어도 종종 만나면서 역시 좋은 인연을 이어가려 노력한다. 그런 노력들은 그래도 내가 나의 '본성'에만 머무르지 않고, 나름 삶에서 더 중요한 방식이 있다고 믿으며 나아가는 한 과정이라 할 만한 것 같다. 본성에 따라서만 살았다면, 그렇게 쌓아온 인연들조차 내게는 남지 않았을 것이다.
나의 삶은 친구와 우정을 쌓으며 보낼 수도 있었던 시간을 용광로에 넣어 연금술로 나의 글쓰기를 만들어온 것이었다. 어쨌든 아내 말대로, 그렇게 나는 시간을 등가교환하며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았다. 앞으로는 또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인연의 소중함을 조금 더 아는 사람으로 삶을 살다 떠났으면 싶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