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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우 May 25. 2022

인생의 문제는 궁극적으로 해결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살아오면서 알게된 것 중 하나는 인생의 여러 문제를 '궁극적으로' 해결하려고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나는 인생의 문제들에는 궁극적인 해결책, 궁극적인 순간 같은 게 있으리라고 믿었다. 가령, 공모전에 당선만 된다면, 시험에 합격만 한다면, 취업만 한다면 무언가 나의 문제들이 '궁극적으로' 해결될 거라 믿곤 했다. 어떤 꿈을 이루기만 한다면, 어떤 것을 얻기만 한다면, 그 순간부터는 문제가 '해결된' 시간이 펼쳐지리라 믿었다. 


그러나 오히려 요즘 느끼는 건 인생의 진실은 궁극적인 해결이 아니라 궁극적인 문제가 존재한다는 쪽에 가깝다는 점이다. 인생에는 결코 채울 수 없는 궁극적인 결핍이나 갈망이 있다든지, 인생이란 궁극적으로 불확실하여 계속 크고 작은 문제들이 연결되어 있다든지, 하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렇기에 모든 문제는 궁극적인 해결책을 찾기 보다는 견디면서 점진적으로 나아지도록 만들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 


반면, 문제를 궁극적으로 해결해버리고 말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힐수록, 오히려 인생은 온갖 문제들을 더 만들어내는 것 같기도 하다. 일종의 풍선효과처럼, 어느 한쪽을 '완전히' 눌렀다고 믿는 순간 다른 한 쪽이 부풀어 오른다. 그건 사실상 궁극적으로 해결했다기 보다는 해결했다고 믿는 쪽에 가까울 것이다. 그보다는 삶 자체를 생각할 때 어떤 해결이나 시점의 단절 보다는 끝없는 연속 쪽으로 생각해야만, 여러 문제들을 잘 다루면서 살아갈 수 있지 않나 싶다. 


예를 들어, 나에게 빚이 1억이 있는데 이 빚 때문에 고통받고 있어서 1억을 다 갚아버리면 궁극적으로 해결되었다고 믿을 수 있다. 그런데 그 궁극적인 해결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투기적인 대박을 꿈꾸거나 지나치게 인생을 타이트하게 살 수도 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오히려 더 큰 실패를 할 수도 있고, 인생을 너무 각박하게 살 수도 있다. 그보다는 이 빚을 천천히 갚아나가면서 빚과 공존하는 장기적인 플랜 속에서 성실함, 꾸준함, 또 오늘들을 포기하지 않고 사랑하는 법을 함께 가져가야 싶지 않나 하는 것이다. 


요즘처럼 자산이 폭등한 시대에는 집 한 칸 얻는 일에도 그처럼 매달릴 수도 있다. 집만 얻으면 모든 게 해결되리라는 믿음 하에, 집을 사는 일에만 지나치게 매달릴 수도 있다. 그러면 집을 살 때까지의 시간은 일종의 희생하거나 버린 시간이 된다. 또한 집을 사면 사는대로 그 이후에 펼쳐질 문제들을 맞이할 준비가 되지 않을 수 있다. 사실, 삶은 내가 특정한 어떤 '시점' 이전에든 이후에든 존재하고 이어진다. 


물론, 인생의 어떤 심각한 문제들은 당장 기를 쓰고 해결해야 하기도 한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많은 문제들은 단번에, 완벽하게, 깔끔하게 해결되지 않고 오히려 인생 내내 따라다닌다. 혹은 문제들 자체가 디폴트값으로 주어져 있는 게 인생 같기도 하다. 그러므로 삶을 현명하게 사는 방법은 '문제들과 공생'하기가 아닐까 싶다. 말하자면, 인생이란 저마다 갖고 있기 마련인 어떤 지병들과 함께 살아가는 그런 일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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