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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우 May 24. 2022

산만함과 싸워왔던 인생


Photo by Markus Spiske on Unsplash



나의 초등학생 시절 학생기록부를 보면, 거의 늘 등장하는 게 '산만하다'는 말이다. 실제로 나는 너무 산만해서 수업에 제대로 집중을 하지 못하고 벌떡 일어나 돌아다니거나, 끊임없이 짝꿍에게 장난을 치거나, 낙서를 하고 딴 짓을 하곤 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는 보다 못한 담임 선생님이 교탁 옆으로 내 책상을 옮겨 '독도'라고 명명하기도 했다. 2학년 때 선생님은 어머니를 만나서 20년 교사 생활에 나 같은 아이는 처음 본다며 엉엉 울었다고 한다. 통제 자체가 안되는 아이였던 모양이다. 


사실, 나는 성인이 되어서도 내가 산만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특히, 자주 공상을 한다는 점에서 그랬다. 끊임없이 무언가 생각이 나고, 그걸 통제하기 쉽지 않았다. 책에서도 쓴 적이 있지만, 내가 그에 대처한 방법은 끊임없이 '글을 쓰는' 것이었다. 생각들을 글로 옮겨 놓고 나면, 한동안 집중할 수가 있었다. 그런 식으로 매달 몇 권의 일기장을 채우거나, 매일 A4 몇 장씩 되는 글을 써내고, 나의 일을 했다. 


이를테면, 책 한권을 읽어내는 것도 쉽지 않아서, 책을 읽는 동안 떠오르는 생각들을 써내는 시간이 더 많았다. 그렇지 않으면 난독증에 걸린 것처럼 눈만 움직이고 글이 읽어지지 않는 순간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 식으로 쓰고 읽기, 쓰고 집중하기, 쓰고 일하기, 쓰고 살아가기, 라는 식으로 내 산만함을 이겨냈다. 달리 말하면, 나는 나만의 집중법이랄 것을 간신히 익혀낸 셈이었다. 


서른이 넘어 수험생활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가만히 앉아서 교과서를 읽거나 강의를 듣고 있으면, 나는 집중할 수 없었다. 집중하려면, 써야 했다. 그것을 다시 깨닫고 나서야 수험공부에도 적응하고 성적도 올릴 수 있었다. 읽거나 들어서 공부해서는 거의 대부분이 새어나간다는 걸 알았다. 대신, 모든 과목을 항상 쓰고 정리해서 나만의 책을 만들고 내가 직접 정리하는 식으로 집중할 수 있었다. 나는 공부를 하려면 직접 책을 써야했다. 그렇게만 할 수 있었다. 


요즘에는 인류 역사상 인간이 가장 산만한 환경에 노출된 시대라고들 한다. 무엇보다도 하루에 2~3천번씩 만지게 되는 스마트폰의 존재, 끝없는 알람, 상시적인 연락, 하루에 수백번 보게 되는 광고, 다채로운 이미지들, 끝없이 흘러 넘치는 유행들, 무한해진 선택들, 이런 것이 인류에게서, 특히 아이들에게서 집중하는 능력을 앗아가고 있다고 한다. 모르면 몰라도, 나처럼 산만하게 태어나지 않은 사람들도 자기만의 집중법이라는 걸 익혀야 하는 시대일 것이다. 


나에게 무언가를 쓰는 일, 직접 내 손 끝에서 검은 문양들을 탄생시키고 그것들로 성을 짓는 듯한 그 느낌에 몰두하는 것이 일종의 생존 방법이었다. 그렇게 해야만 이 온통 불안정한 영혼을 붙잡아 그 속에 새겨 넣고 고정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그렇게 나의 기질과 싸우며 나를 정상적인 한 명의 인간으로 스스로 만들고자 했던 일이, 나의 일상이 되고 인생이 되었으며, 직업이 되고 삶의 방식이 되었다. 


그리고 이 산만한 시대에 나를 지키는 나만의 방법이 되었다. 그래서 온 세상이 더 산만해지는 시대에도, 나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나의 글쓰기에 만큼은 몰입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것은 어찌 보면, 그저 내가 유령이나 해파리가 되지 않기 위해 했던 일이었기도 하다. 그냥 일상을 잘 살고 싶어서 했던 일이기도 하다. 그리고 지금도 그러기 위해서 하고 있는 일이기도 하다. 이따금 삶의 여정이라는 건, 그렇게 자기 내면의 싸움으로 그려지는 것에 불과하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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