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는 반드시 원치 않는 고통이 찾아온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크고 작은 실패, 원치 않았던 다툼, 상상해본 적 없었던 병이나 파산도 올 수 있다. 그런 것들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삶은 없다. 그저 사람이란, 안정과 평온이 이대로 계속하여 지속되길 바라지만, 반드시 괴로운 날들은 찾아온다.
내가 생각할 때, 삶의 차이란 그런 순간들을 어떻게 견뎌내거나 이겨내는 데 달려있는 것 같다. 누군가는 예상치 못한, 원치 않았던 온갖 불협화음들이나 고통들에 그야말로 패배해버려서 더 이상 재기가 불가능한 상태가 되어 버린다. 육박해오는 시련을 견디지 못해, 모든 걸 포기해버리거나 도망치고 숨고 싶은 마음만으로 회피해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삶의 '시련 구간'에서도 필사적으로 그 시간을 견뎌내고 이겨내는 법을 찾아낸다. 매일매일이 끝나지 않는 지옥 같을지라도, 언젠가 출구가 있으리라 믿으며 걸음을 끝없이 옮겨 나간다. 사실, 그런 시련은 어느 날 너무 갑작스럽게 도래해서,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경우도 허다하다. 중요한 건 철저한 준비라기 보다는, 막상 그런 시절과 상황이 도래했을 때의 임기응변 쪽에 있다고 보는 편이 맞을지도 모른다.
내 생각에, 삶에 시련이 온다면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정신을 번쩍 차리는 것이다. 그리고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가용 가능한 모든 자원을 탐색한다. 내가 낼 수 있는 모든 힘을 다 내고, 내가 쓸 수 있는 모든 에너지를 다 쓴다는 마음으로 그 문제를 마주한다. 만약 도저히 내가 당장 해결 불가능한 일이라면, 내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인내심을 발휘한다. 그 인내심으로 매일 그저 '할 수 있는 일'을 하되, 이 일이 언제 끝날지 정해두진 않는다. 시지프스가 끝없이 바위를 산 위로 올리듯, 매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내겠다는 마음을 먹는다.
관건은 '매일 조금씩'이다. 할 수 있는 일을 했다면, 더 이상 그 문제에 사로잡히진 않는다. 이대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1년, 3년, 5년 계속 해나간다면 된다는 마음으로, 철저하게 '해야할 일'에 몰두한다. 해야할 일을 다하고 나면, 더 이상 그 문제에 마음 쓰는 노예가 되지 않게끔, 나에게 휴식을 준다. 운동을 하든, 글쓰기를 하든, 친구를 만나 술을 마시든, 내게 필요한 시간을 허락한다. 나를 하나의 운용 가능한, 배터리가 있고 충전 가능한 로봇으로 취급한다.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충전하고, 다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충전한다. 그 문제가 끝날 때까지 그렇게 버텨낸다.
내가 살면서 본 자기만의 시련을 통과한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했던 것 같다. 자기기만을 하지 않고, 똑바로 직시하고, 다만 단번에 해결할 수 없다면, 매일 조금씩 해결하며, 나아간다. 나아가다 보면, 걸어가다 보면, 문제의 끝이 조금씩 보인다. 마치 주식 같은 모든 자산에도 상승과 하락이 있듯, 삶에도 하락이 있으면 상승이 있어서, 중요한 건 다만 하락기를 잘 버텨내는 것이다.
그러려면 자기 자신에게 매우 냉정해야 한다. 무엇보다 단절을 알아야 한다. 해야할 일을 하고, 단절하고, 해야할 일을 하고, 단절하면서, 스스로를 길들여야 한다. 그렇게 한 시절이 끝나고 나면, 마치 담금질한 것처럼 단단해진 자기를 만나게 된다. 거의 모든 사람은 그렇게 성장한다. 성장하기 전에는 도무지 예상하고 믿을 수 없던 시절을 건너, 한 명의 어른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