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열등감을 주던 친구들

by 정지우

청년 시절, 나에게 열등감을 주는 친구들이 있었다. 고등학생 때, 나는 나보다 글도 잘쓰고, 아이디어도 빛나고, 어딘지 통찰력까지 갖춘 한 친구에게서 열등감을 느꼈다. 심지어 그 친구는 나중에 연상의 멋진 여자 친구까지 생겼는데, 작가를 꿈꾸던 나에게는 모든 면에서 그 친구가 작가에 적절한 사람처럼 보였다.

나랑 말도 굉장히 잘 통해서, 친구들 전체를 통틀어 나는 베스트프랜드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예민했던 시절, 그 열등감은 잘 씻기지 않았고, 결국 몇 가지 다툼으로 그 친구와는 멀어졌다. 이후 소식은 별로 들을 길이 없었는데, 한 가지는 알고 있다. 그는 작가가 되지 않았다.

대학 시절에도, 내가 볼 때는 나보다 훨씬 멋지고, 예술가적 감수성으로 넘쳐나는 것처럼 보이던 사람들이 있었다. 하다못해, 학교의 글쓰기나 창작 수업에서도, 나는 교수님으로부터 딱히 인정받은 적이 없었던 반면, 반짝반짝 빛나는 글들을 쓴다며 칭찬받던 사람들도 많았다. 그렇지만, 내가 기억하는 그들 중 누구도 작가가 되지는 않았다.

나는 나만의 고집으로 계속 글을 쓰긴 했지만, 별로 글을 쓸 만한 사람이라는 근거를 세상으로부터 받았던 적은 없다. 신춘문예 같은 공모전에는 아마 100번은 떨어졌을 것이다. 간혹 철학과 교수님으로부터 관점이 독창적이라는 코멘트를 받긴 했지만, 글 잘 쓴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었다. 나는 그런데도 왜 계속 작가가 되려 했던걸까. 나도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세월은 흘러, 내가 주변 사람들로부터 열등감을 느끼며, 혼자만의 고집에 갇혀 글쓰기를 이어가던 그런 일들도 20년 전 이야기가 되었다. 그런데 돌아보니, 그 중에서 작가가 된 사람은 나밖에 없다. 그 이유는 별 게 없었을 것이다. 나는 내 인생의 모든 것을 걸어서라도 작가가 너무나 되고 싶었고, 그들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어느 시절의 빛남이나 재능 같은 건, 사실 어느 존재가 무언가가 되는 일에 크게 상관이 없지 않나 싶다.

나 자신을 돌아보더라도, 내가 10대 시절 내내 재능있다고 들었던 영역은 미술이었다. 중고등학생 때도 미대 입시반 친구들을 제치고 자주 미술과목 만큼은 전교 1등을 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제 와서 그림을 그려보라고 하면, 딱히 잘 그린다고 말하기도 어색한 수준이다. 나는 화가가 될 생각이 없었고, 그래서 그림도 못 그리는 사람이 되었다.

마흔 즈음에 이르러 보니, 삶이라는 게 얼마나 어디에 욕망이 간절한가에 따라 많이 달라진다는 걸 보고 느낀다. 물론, 욕망만 있어서는 안되지만, 매일의 실천이 동반되는 욕망에는 분명 힘이 있다. 요행으로 대박을 내겠다거나 사기 쳐서 무언가를 이루겠다는 식이 아닌 한, 끝없는 욕망과 실천은 그 사람이 도착할 수 있는 지점까지는 그를 확실히 데려놓는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반대로, 잠깐의 잘남이나 재능, 빛남에 취하는 건 사실 별 의미가 없는 것 같다. 그런 건 삶이 되지도 못하고, 의미가 되지도 못한다. 삶과 의미로 자리잡는 건, 오랜 시간 자신의 열망을 삶에 녹여내어 쌓은 하루하루의 나날들이라는 것을, 많이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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