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보다 끝이 어렵다

by 정지우


신부님들 사이에서는 "신부를 시작하는 것보다 신부로 끝맺는 게 더 어렵다."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신학생 시절부터 신부가 되는 과정에서 절반 가까이가 이탈하고, 신부가 되어서도 끝까지 신부로 남지 못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한다. 나는 신부님들은 왠지 절대적인 확신으로 신부의 길에 들어설 줄만 알았는데, 그렇지 않고 평생이 신부가 되어가는 과정이라고 한다. 끝없는 고민 속에서 신앙과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것이다.

홀로 있는 사택에서, 매일 밤 마주하는 고독과 신에 관해 생각해본다. 아마 신부님 또한 신에 기대어, 오늘의 일용할 믿음을 얻고, "이 길을 계속 걷는 것이 당신의 뜻이겠지요?"라고 물으며, 때론 흔들리고 고민하며 나아가지 않을까 싶다. 빈민가에서 사역을 시작해서 세계적인 존경을 받은 마더 테라사의 편지에는 "저에게는 침묵과 공허감이 너무 커서 보려 해도 보이지 않고, 들으려 해도 들리지 않습니다."처럼 신의 존재를 느끼지 못해 고민하는 여정이 담겨 있다. 그녀 또한 '절대적인 확신'으로 길을 걸은 게 아니었다.

우리는 마치 타인의 여정을 볼 때, 그들이 의심 없는 확신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믿고 싶어한다. 그러나 모든 사람은 자신의 길에 대해 의심하고, 고민하며, 때론 외로워하고, 고립감 속에 절망하며 나아간다. 다만, 다른 점은 그들은 그런 고민 속에서도 매일 발걸음을 옮기녀 나아갔다는 점이다. 그렇게 삶으로 무언가를 증명해냈다는 점이다. 테레사 수녀는 자신을 괴롭힌 '신의 부재'에 대해 수치스러워 했지만, 카톨릭 신부들은 오히려 그런 고민이 그녀가 위대한 길을 걸을 수 있게 한 신의 선물이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삶이라는 것은 우리가 스스로 느끼는 것과, 결국 만들어진 결과가 참으로 다른 듯하다. 스스로 느낄 때는, 내가 참 부족하고, 하잘 것 없고, 온통 부서진 듯하고, 남들에 비해 온갖 번뇌 속에서 시름시름 앓고 있는 것 같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문득 고개를 들어 이어온 평생의 걸음을 돌아보면, 내가 걸어온 길이 참으로 별자리처럼 아름다웠구나, 라고 느끼는 때가 올지도 모른다. 마치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서 드러난 평범한 모든 사람들의 여정의 숭고함처럼, 우리는 저마다 가족을 위해, 나를 위해, 또 다른 무언가를 위해, 애쓴 결과 나름의 보람된 궤적을 만들어왔다고 믿게 될 날을 만날지 모른다.

나도 지나온 여정을 돌아보면, 확신 보다는 그저 하루하루의 걸음을 믿었던 것 같다. 매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나가는 것 외에 달리 대단한 것을 믿을 방법은 없었다. 그저 이 삶이 나를 마땅히 내게 어울리는 것으로 이끌 것이라 믿으며, 나는 매일 안에서 성실하려고 애썼을 따름이다. 그저 내게 중요한 게 무엇인지를 매일 기억하려 하면서, 삶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그 우선순위에 따라 살고자 했다. 그러나 그조차도 항상 지키진 못했다. 어느 정도, 가능한 선에서, 때론 최선이 아닐지라도, 그저 살아낼 수 있는 삶을 살아내고자 했을 뿐이다.

작가의 삶이든, 신앙인의 삶이든, 좋은 아빠나 남편의 삶이든, 무엇이든 시작하는 것보다 그것으로 끝나는 게 더 어렵다. 때론 그 어려운 것을 살아낸 모든 이들이 존경스럽다. 나는 이 삶의 끝까지, 내가 살고 싶었던 바로 그 사람으로 살 수 있을까. 모르겠지만, 그저 하루하루를 그렇게 이겨내며 나아갔으면 한다. 50여년간 신의 존재를 의심하면서도 나아갔던 마더 테레사처럼, 그 밖에 자기 삶의 의미를 의심하면서도 끝까지 책임졌던 모든 사람들처럼, 나도 이 삶을 책임지며 나아갈 수 있었으면 한다. 모처럼 크리스마스에 아내와 아이랑 성당을 다녀왔다. 오늘따라 환하게 웃는 신부님의 얼굴이 다르게 보였다. 그렇게 신자들 앞에서 웃는 모습 이면에, 그에게도 얼마나 많은 어둠이 있을까, 생각했다. 그의 웃음에 존경을 보낸다.

* 사진 출처 - 뉴욕타임즈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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