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나는 무엇을 했나

by 정지우

한 해의 마지막이니 만큼, 올해 나는 무엇을 했을까, 정리해본다. 단순한 숫자의 나열이 아니라, 내 삶의 우선순위에 따라 올바르게 시간을 썼는지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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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아이는 초등학교를 갔고, 우리는 그 첫 시작을 잘 돕는 데 시간과 마음을 많이 할애했다. 아내는 반년 휴직을 하며 아이 곁에 있었고, 나머지 반년의 등하교는 내가 거의 전담했다. 방학 때는, 아이를 데리고 방송국이나 강연장에 데리고 가기도 했다. 아이는 곧잘 따라왔고, 아나운서 누나들이나 찾아온 독자들의 귀여움도 받았다. 우리는 함께 여행했고, 열심히 곤충을 잡았고, 바다에서 수영을 하고, 자전거를 타고 한강을 갔고, 태어나서 처음 캐치볼을 하고, 도마뱀을 새 식구로 맞이했다. 나는 요리를 전담하게 되어, '매일 설레는 저녁 식사를!'이라는 모토로 나름 열심히 했다. 아이는 통통하게 살이 오르고, 구구단을 외우기 시작했다. 나는 내 삶에서 가장 값진 것에 시간을 충분히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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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 후 온갖 일들을 닥치는대로 했던 시기를 지나, 올해 하반기부터 나는 우선순위에 따라 일들을 정리했다. 변호사 일은 저작권 분야로 최대한 한정하고, 작가로서의 일을 넓혔다. 4권의 책을 썼고, 특히 AI와 저작권 분야에 특화한 일들, 강의들을 많이 했다. 이렇게 내가 삶에서 중요하다고 믿는 일들을 중심으로 '우선순위'를 정해 정리하기까지, 10년은 걸렸다는 생각은 든다. 지난 10년 동안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다. 변호사로서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종류의 사건을 했고, 장소 안 가리고 강의를 뛰어다니거나, 오는 제안은 다 받아보기도 했다. 이제는 일을 가려서 하기 시작했다. 시간과 삶을 우선순위에 따라 통제하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좋은 삶이라 믿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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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뜻깊은 일을 하나 추가하게 되었다. 비영리재단 사단법인 오늘의 이사장이 되었다. 청년 문제를 문화예술을 통해 해결했다는 모토로 만들어진 이 뜻깊은 단체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했다. 내년부터는 조금 더 본격적으로 일을 하게 된다. 내가 처음 제시한 방향성은 '로컬 청년들'을 찾아나서자는 것이다. 나는 로컬이 무너지면 대한민국에는 미래가 없다고 생각한다. 올해에도 부쩍 로컬로 다니며 인연을 맺는 일이 많았다. 내년은 더 그럴 것 같다. 내가 이 세상에 있는 게, 없는 것보다 조금은 더 나은 일이 될 수 있도록 애써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겨, 감사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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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부터 내 삶에 하나의 목표는, 우정을 쌓는 것이다. 애써 사람들을 만나 밥 먹고, 술 먹고, 이야기도 나누는 일이다. 무작정 이름도 기억할 수 없는 너무 많은 사람들과 연을 맺으며 '나비'처럼 돌아다니기 보다는, 내게 소중하고 중요한 사람들을 조금 더 만들어가며 만나고자 했다. 오랜 친구들도 만났고, 몇 년씩 인연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생겼다. 글쓰기 모임원들도 일부러 오프라인에서 몇 차례 만났다. 여동생도 어느 해보다 자주 만났고, 양가 부모님도 여러 차례 찾았다. 삶에는 소중한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홀로 '나 잘났다'라고만 생각하며 고고하게 살기에, 인간은 인간을 너무 사랑하도록 만들어져 있다. 소중한 사람들을 애써 만들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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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나는 독자이기도 했다. 매달 4편 정도의 서평 칼럼을 기고했고, 독서모임이나 철학세미나도 하면서 자연스레 많은 책들을 읽었다. 아마 소비 중에서 가장 값진 소비는 책 소비가 아닐까 생각한다. 나에게도 좋고, 세상에도 좋다고 확신한다. 책을 많이 사고, 읽고, 소개하고, 알렸으니 나는 좋은 일을 했다고 생각한다. 30대 이후, 수험생활이며 직장생활을 하느라 책을 20대에 비하면 많이 읽진 못했던 것 같은데, 올해는 책을 가장 많이 읽은 30대였다. 그래서 행복했다. 평생 책을 읽고 소개하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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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밖에 나름 헬스도 6개월 끊어서 열심히 다녔다. 평균 주2회 정도였지만, 내 인생에서는 기념할 만한 일이다. 금융과 투자에도 어느 정도 관심을 가져보았다. 무리한 도박 같은 건 예나 지금이나 할 생각은 없지만, 경제를 알고 자산 관리도 할 줄 아는 '어른'이 되려고 노력 중이다. '나는 그런 거 몰라, 안해.'하고 회피하지 않는, 삶에 필요한 모든 걸 조금씩 알아가고, 책임질 줄 알고, 성실히 해내는 인간이 되어갔으면 한다. 40대에도 매년, 매일 배울 일들이 많을 것이다. 내년도 꼭 올해와 같이, 내가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들을 회피하지 않고 마주하며 나아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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