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대 연구팀에 따르면, 죽기 전에 하는 후회는 유난히 중년기와 관련되어 있다고 한다. 의외로 어린 시절이나 청년기를 후회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 시절은 철없고, 그저 열정에 가득 차 있고, 마음이 앞서던 시절이니 무엇이든 해보게 되고, 특별히 후회할 일들이 쌓이진 않는다. 그러나 중년기에는 유난히 후회를 남긴다고 한다. 가족과 시간을 더 보낼걸, 친구에게 연락할걸, 도전하고 모험해볼걸, 알고 보면 그때도 젊은 날이었는데.
명실상부 중년기에 접어든 내 입장에서는, 이 말이 참 심각하게 들린다. 나는 어떤 중년기를 보내야 후회를 하지 않을까, 어떤 중년이어야 그래도 후회 없이 잘 살았다고 믿을까, 하는 고민이 시작된다. 사실, 30대까지는 어찌 보면, 다소 정신 없이 살았다. 아직 꿈꾸던 20대에는 그저 정신나간 것처럼 읽고 쓰는 일에 파묻혀 있으면 되었다. 읽어야할 책이 산더미였고, 아직 나의 글쓰기는 부족하게만 느껴졌으니까.
30대에도 먹고 살기 바빴다. 아이가 태어났고, 전셋집을 구해야 했고, 이자를 갚아야 했고, 취업을 해야했고, 이직도 해야 했고, 독립하고 자리도 잡아야 했다. 20, 30대에는 후회할 겨를이 없었다. 말하자면, 거기엔 후회할 만한 여유 공간이 없었다. 후회라는 건 선택의 여력이 있는 상황에 대해서나 진심으로 할 수 있는 것이다. 그저 부지런히 달려온, 2030의 청춘에 무슨 후회를 더할까? 무에타이나 배워볼걸? 미국 여행이나 해볼걸? 그런 후회를 하기엔, 나름 다른 것들로 충실히 청춘을 채웠다.
중년기에 접어들면, 조금 다른 선택의 여지들이 생기는 듯하다. 다니던 회사에 평생 더 다닐 수도 있겠지만, 사업을 해볼 수도 있다. 사업이나 사회경제의 구조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자신의 자금이나 경력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없을지도 조금씩 가늠이 될 때다. 결단을 내리기에 따라 다른 삶에의 여지가 아직 열려 있다. 삶의 가치관도 어느 정도 생길 때이므로, 자기 삶의 가치관에 따라 시간을 더 투여하거나 덜 투여할 수도 있다. 인생이 다 가기 전에, 할 수 있는 이들에 발을 들여놓을 수도 있다.
그때라도, 운동을 시작할 걸. 그때라도, 악기 하나 배워볼걸. 그때라도, 책 한 권을 쓰기 시작해볼걸. 그때라도, 미대륙을 한 번 횡단해볼걸. 그때라도, 차를 한 대 빌려서 유럽의 작은 마을들을 돌아볼걸. 그때라도, 아내와 춤을 배워볼걸. 그때라도, 아이와 수영을 다녀볼걸. 할 수 있었는데. 할 수 없는 게 아니었는데, 왜 나는 그럴 결단을 못 내렸을까. 왜 내게는 그럴 용기가 없었을까.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하기엔, 어쩔 수 없지 않았다는 후회. 그런 것들이 중년기의 후회를 채우는 것이 아닐까 싶다.
중년기에는 여러 폭풍에 휩쓸리는 때다. 갑자기 사회적으로 일이 자리잡아가면서, 정신없이 일에 몰두할 수도 있다. 그러다 보면, 가족과는 소원해지고, 이혼에 이르기도 한다. 혹은 자녀들의 학업이나 가정의 일에 너무 몰두하다가, 사회적 자아를 지나치게 잃어 후회하기도 한다. 갑작스러운 확신에 크게 투자를 하다가, 큰 돈은 잃고 파산에 내몰리기도 한다. 잘못된 사업 결단과 자신감으로, 쌓았던 삶의 모든 걸 잃기도 한다. 성추행이나 불륜을 저질러 명예가 실추당하기도 한다.
내 안의 불안과 욕망, 긴장을 다스리면서, 내가 정확히 살고 싶은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한다. 내가 스스로에게 떳떳한, 후회 없는, 잘 살았다고 믿을 수 있는 그런 중년기를 살아낼 수 있을까? 나는 마치 그런 중년기를 실험하듯, 가족과 함께 가장 긴 여행을 떠났다. 이 삶이 허무한 실험에 그치지 않기를, 온당히 후회 없는 삶으로 이르기를, 기도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