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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우 May 30. 2022

"각자 꼴리는 대로 사는거지." (f.나의 해방일지)


"각자 꼴리는 대로 사는거지. 나도 개선의 의지가 없고, 너도 개선의 의지가 없고."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를 보면서 유독 인상적이었던 대사였다. 이 말은 다음과 같은 말로도 바꿔서 이야기해볼 수 있다.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줘." 또는 "나를 너에게 맞게 마음대로 바꾸려고 하지 마." 드라마 대사대로는 꽤나 불량한 말처럼 보이지만, 현실에서는 알게 모르게 많은 사람들이 의지하며 매달리는 말이기도 하다. 굳이 노력하지 않거나 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나를 인정받고, 있는 그대로의 내가 받아들여졌으면 좋겠다는 마음 같은 것 말이다. 


그런데 늘 생각해왔던 것이지만, 사랑의 관계 또는 그밖의 사람과 사람이 맺는 관계라는 것은 변화를 전제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사람에 따라 '조금씩 변화'하는 것이야말로 상대를 존중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있는 그대로의 나를 고집하기 보다는, 서로의 변화를 조금씩 이끌어내는 매 순간들이야말로 진정한 관계 맺기의 순간들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상대주의의 시대, 각자가 옳고, 서로가 침범 불가능한 영역을 지니고 있고, 그래서 굳이 변화하지 않으려 하는, 각자 MBTI에 따라 각자가 절대적인 시대는 반쪽짜리 시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우리 사회가 워낙 폭력적인 기준에 따라 인간을 평가하고 서열짓는 일을 오랫동안 해왔다보니,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상대주의나 개인주의가 범람하는 걸 이해할 수 있다. 나만 하더라도, 내게 어울리는 방식으로 관계 맺고 살아가고 싶다. 그럼에도 어느 정도의 변화에는 열려 있어야 한다는 생각도 든다. 


내게 어울리는 것을 집요하게 찾으며 자기 자신을 지키되, 동시에 내가 절대적인 존재는 아니어서 '개선될 여지'도 있다는 걸 받아들일 필요도 있는 것이다. 변화를 무례하게 강요하는 세상에는 맞서 싸워야 하지만, 동시에 스스로에게 필요한 변화들은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어떻게 보면, 모순된 태도를 동시에 가져야 하는 셈이기도 한데, 이 모순을 견디면서 균형을 유지하는 게 삶에서 참으로 중요한 지점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대개 사랑의 시작은 전쟁의 서막이기도 하다. 각자 다른 두 사람이 만나서, 서로가 살아오고 느낀 방식이 부딪히기 시작하는 순간이고,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라며 엄포를 놓다가도, 스스로 반성하며 고치기도 하고, 자기를 지키기 위해 그리고 더 나아지기 위해 끊임없이 갈등하는 여정이 사랑이기도 하다. 아마도 그런 '사랑의 여정'을 인생 자체에 빗대어도 크게 틀리진 않을 것 같다. 인생에서도 유지할 건 유지해야 하지만, 변할 건 과감하게 변해야 한다. 


그럴 때, 특히 추상적인 타인들의 시선은 너무 신경쓰지 않을 필요도 있을 듯하다. 이렇게 변하면 남들이 무어라 생각할까, 그건 생각보다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오히려 그 변화를 체험할 당사자나 가장 가까운 사람들의 생각이 더 중요할 것이다. 사실, 자아는 고정된 게 아니며 인생 내내 바뀌는 것이다. 심지어 우리는 과거의 자아를 거의 기억하지 못하기도 한다. 12살 때의 자아를 50살이 되어서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리고 자신이 변할지 변하지 말아야 할지 알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자아에 대해 거리두는 연습 또한 필요하다. 그런 연습이 쌓이고 쌓여서 인생의 여정, 자아의 여정이라는 것을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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