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지우 Jun 03. 2022

저요?

Photo by Emily Morter on Unsplash


요즘 세대의 언어습관 중에 "저요?"가 유달리 자주 들린다. 무슨 말을 물어보면, 당연히 자신에게 물어본 줄 알면서도 일단 "저요?"를 먼저 한다. 나도 가끔은 전염이 되어서, 누군가가 나에게 사소한 걸 물어보면 "저요?"하기도 한다. 바로 대답하지 않고, 한 템포 쉬면서 말을 고른다. 아주 사소한 습관이자 유행일 수 있는데, 그 순간에서 짐작되는 게 있다.


이런 언어습관은 자신에게 무언가 질문이 온다는 것이 낯설다는 느낌을 준다. 어디에 사는지, 몇 살인지, 취미는 무엇인지, 고향은 어딘지 같은, 어찌 보면 인간 관계에서 가장 기초적인 질문이자 정보이지만, 그런 질문조차 어느 정도 '실례'가 되어가는 시대가 반영된 것 같기도 하다. 요즘에는 동호회 같은 곳에서 만나더라도, 서로의 직업이나 나이 등 일체의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닉네임으로 부르며 모임의 주제에만 집중하는 경향도 매우 널리 퍼지고 있다. 나의 사적인 정보에 대해 묻지 말라, 라는 것이 이 언어습관에 반영된 게 아닌가 싶다.


과거에는 전화번호부에 온 집들의 전화번호가 공개되어 있었고, 심지어 주민번호까지 동네방네 공개하고 다니는 세상이었지만, 지금은 그 모든 게 아주 민감한 정보가 된 시대다. 법적으로 보면,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이나 '사생활의 비밀' 같은 기본권들이 강조되는 맥락과 같다. 달리 말하면, 개인간의 관계에서 각자 간직하는 비밀이 많아지고, 서로에게 엄격한 선을 지키면서 거리를 두는 것이 일반적이 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저요?"의 뉘앙스에는 그처럼 "나한테 그런 걸 왜 묻는 거죠?"라는 질문이 함축되어 있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그것이 전부는 아닌 듯하고, "나한테 묻다니, 내 말에 집중하겠다는 뜻인가요?"라는 묘한 뉘앙스가 느껴질 때도 있다. 달리 말하면, 묻지도 않은 말을 하는 건 TMI로 여겨질 수 있지만, 묻는 말에 이야기하는 건 '당신이 원했으니 내가 말할게.'가 된다. "저요?"는 때론 불쾌함이나 숨고르기이지만, 때론 반가움이다. 서로에 대해 잘 묻지 않는 시대에, 서로에 대해 묻는다는 건 관심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저요?"라는 건 관심에 대한 무서움과 갈구가 모두 담겨 있는 시대를 보여주는 유행어가 아닐까 싶다. 유명인들을 보면, 한 순간에 떠서 잘나가다가도 몇몇 사소한 정보나 과거로 인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거의 모든 정보는 공격 대상이 될 수 있고, 인생을 걸고 넘어뜨릴 수도 있다. 그럼에도, 우리 시대는 관심을 갈구하는 '외로운' 시대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추앙'받길 바라며 SNS에 자기를 전시하기도 하고, 그 누군가에게는 화색이 도는 표정으로 "저요?"라고 말하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기도 하다. 


아마도 이 시대에 살아가는 일을 사랑하고자 한다면, 그처럼 '관심'과 어떻게 관계 맺을지가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누군가의 관심 때문에 울고 웃고, 실패하고 성공하며, 괴로워 떨고 환희에 차는 시대다. 지나친 관심은 독이 되지만, 지나친 무관심은 삶을 공허하고 메마르게 만들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무관심과 외로움이 더 일반적인 시대에, 어떻게 서로에게 진심어린 관심을 나누는 관계를 지닐 수 있을지 많은 고민이 필요하기도 할 것이다. "저요?"라는 그 순간의 머뭇거림이, 서로를 더 조심스럽게 어루만지면서도 서로를 배척하지 않고, 서로의 선을 다정하게 살짝 넘는 그런 계기가 되는 관계들이 널리 자리잡았으면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각자 꼴리는 대로 사는거지." (f.나의 해방일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