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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우 Jun 14. 2022

요즘 유행하는 예능들의 문제점

Photo by Andre Hunter on Unsplash


요즘 유행하는 예능들을 보고 있으면, 마치 블랙유머를 자랑하는 디스토피아 영화의 한 단면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전 세계 역사상 거의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저출생 국가가 하나 있다. 이 국가의 청년들은 역사상 가장 연애도 하지 않고, 결혼도 하지 않는다. 이 나라의 공동체는 거의 붕괴되어 옆집 이웃과도 인사하는 일이 드물며, 모두가 각자도생을 모토로 무한한 경쟁 속에서 간신히 한 몸 건사하고 있을 뿐이다. 그 와중에 유행하는 예능들이 있다. 


이 예능들은 주변에서 보기 힘든 선남선녀나 고스펙의 남녀들이 등장하여 누가 짝을 쟁취할 것인지 경쟁한다. 또한 보통 사람들이 결코 누릴 수 없는 환경에서 초호화 육아를 하거나 혼자 호화롭게 사는 연예인들이 얼마나 행복하게 지내는지가 방영된다. 나아가 이혼을 다루는 프로그램들은 결혼이 얼마나 지옥 같은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설득한다. 이런 문화 콘텐츠들이 수렴되는 지점이 있다. 저 끝없는 경쟁을 뚫고 최상의 자리에 오르지 않는 한, 그 위치에서 최고의 성격과 스펙과 능력을 지닌 사람을 만나지 못하는 한, 사랑하지 말 것, 결혼하지 말 것, 아이를 키우지 말 것, 이라는 지점이다. 


이런 프로그램들이 우리에게 행복에 이르는 길을 잔잔하게 알려주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오히려 이런 프로그램들은 거의 하나의 메세지를 집중적으로 전달하는데 "어지간해서는 행복할 수 없다."라는 것이다. 행복은 오로지 호화로운 삶을 보장받은 일부에게만 주어지는 것이다. 반면, 그외의 삶은 필연적인 고통으로 가득 차있거나, 행복에 다갈 설 자격이 없는 것이라는 인식이 은연 중에 심어진다. 그에 더해 그나마 행복한 결혼이나 육아 생활을 영위하려면, 부부는 거의 심리 상담사 수준의 이해능력을 지녀야 한다. 


달리 말하면, 이런 프로그램들은 거의 우리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세밀하고 미묘한 기준들을 강화한다. 최고의 짝을 찾고자 하는 프로그램은 '짝이 될 자격'에 관하여, 티 없는 성격, 외모, 스펙, 나이 등이 조화롭게 맺어진 어떤 '이상'에 다가가는 방식을 끊임없이 그려낸다. 결혼 생활을 다룬 프로그램들은 관계의 정답에 도달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래서 '함께' 행복하는 일이 얼마나 불가능에 가까운지, 그래서 우리는 얼마나 '잘못된 삶'을 살고 있는지를 거의 매일 보여준다. 사실상 이런 프로그램들의 성공은 얼마나 시청자가 행복에 도달하는 것이 어려운지 알려주는 데 관건이 있는 것만 같다. 


반면, 아주 소박하게 얻을 수 있는 행복들에 관한 이야기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호화로움이 행복의 척도가 되면서, 소소한 시민들의 모습은 사실상 브라운관 밖으로 사라졌다. 이는 우리 사회가 전반적으로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게 무엇인지도 알려준다. 우리 삶의 아주 작고 디테일하며 소소한 행복을 주는 순간들은 사실상 사장되고 있고, 반면, 더 화려하고, 더 호화롭고, 더 값비싸고 더 유니크한 경험들만이 전시되고 주목받으며, 모두가 그런 이미지들만을 바라보며 행복을 동경하고 불행을 먹고 사는 문화가 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은 것이다. 


그러나 사실 삶의 행복이란 꼭 그렇게 멀리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 일상의 모든 조건들이 완벽하게 다듬어져야만 행복할 수 있는 것도 아닐 것이다. 대개 인간의 삶이란 완벽과는 거리가 멀고, 일말의 문제들을 껴안고서도, 그저 매일 그 문제의 틈새들에 있는 작은 행복들을 누리며 사는 게 삶일 것이다. 삶의 대부분이 호화로움 속에서 빛나지 않더라도, 이른 아침에 나서는 동네 산책이나 집에서 삼겹살 구워먹는 저녁, 가족과 수박 썰어먹는 오후에 있는 그런 행복들이 겹치고 쌓이며 이어지는 게 삶에 가까울 것이다. 그러나 이 시대는 그렇게 쌓아가는 자기만의 삶과 행복에 등진 채, 점점 더 큰 행복에 대한 선망과 불행에 대한 두려움만을 쌓아가게 만드는 것 같다. 


달리 말하면, 우리는 어떤 행복의 이미지들을 강탈당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행복은 그들의 것이고, 내가 보낸 오늘 하루의 이미지는 행복과 거리가 멀다. 만약 나도 행복하려면, 그들이 가진 이미지를 가져야 한다. 돈이든, 핫플이든, 최상의 짝이든 말이다. 그러나 그런 방식으로 '진짜'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행복은 그냥 오늘 여기에서 느끼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그저 또 좌충우돌의 내일로 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 틈새 속에서, 또 행복의 순간을 잠시 누리는 것이다. 삶은 늘 여기에서부터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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