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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우 May 27. 2022

'추앙'이 난리다



'추앙'이 난리다.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서 여주인공이 남자를 향해 "날 추앙해요"라고 소리친 이후 온 세상이 '추앙 논란'으로 시끄럽다. 도저히 공감할 수 없고 너무 오글거린다는 사람들도 있고, 너무도 그 마음에 공감된다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지독한 결핍과 외로움 앞에서 추앙당하고자 하는 욕망은 사실 낯설지 않다. 사실상 SNS의 모든 곳이 추앙받고 싶은 욕망으로 뒤덮여 있기 때문이다. 


내가 가진 명품백이나 외제차를 자랑하며 추앙받고 싶은 마음, 다이어트와 몸매 관리에 성공하여 찍은 바디 프로필로 추앙받고 싶은 마음, 자신이 얼마나 아름다운 곳에서 행복을 누리고 있는지 부러움 얻고 추앙받고 싶은 마음, 그런 것들이야 말로 이 시대의 주요한 정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얼마 전 유행한 장기하의 <부럽지가 않어>도 거의 같은 정서를 겨냥하고 있다. 부러움과 추앙의 시대, 동시에 외로움과 결핍의 범람을 말이다. 


<나의 해방일지> 인물들이 가진 소외감, 박탈감, 외로움, 결핍감은 여러 이유에서 오지만, 우리 시대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든 경험해봤을 법한 감정들이다. 마찬가지로 장기하의 <부럽지가 않어>를 부르고 있을 그 노래의 주인공 또한 외로움을 상징하는 것 같다. 그는 누구도 '부럽지가 않다'고 끊임없이 노래부르지만, 누구도 부러워하지 않다고 하는 그 태도야말로 그의 외로움을 보여주는 측면이 있다. 아무것도 부러워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은 사실 부러움이라는 감정을 가장 무서워하며 회피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무엇이라 부르든 '소외감'이라 할 수 있는 이 감정이 해방되거나 해소되길 기다리며 많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똬리를 틀고 있다. 옆집에 사는 이웃조차 살갑게 대하기 쉽지 않은 각자도생의 시대에, 누군가는 드라마 속 인물들처럼 간절하게 이 세상에 '단 한 명' 있을 애인이나 반려자를 찾기도 한다. 가까운 관계와 공동체가 무너진 자리에는, 외롭고 자유로운 개인들이 남았다. 그들은 저마다 추앙받길 바라며 SNS에 자랑거리를 전시하거나, 늘어나는 팔로워와 좋아요, 구독자수에 위로 받는다. 이 시대의 본질은 '단절'이다. 


드라마에서는 "나에게는 모든 관계가 노동이야."라는 대사가 나온다. 어찌 보면, 마음의 본질과 본질이 닿는 '진정한' 관계들은 다 사라져 버리고 노동 같은 관계만 남은 것이 이 '각자도생' 시대의 단면일지도 모른다. 노동 아닌 관계, 겉치레가 아닌 관계, 서로를 거짓말처럼 칭찬하지 않는 관계, 그러니까 온 마음을 담아, 삶을 담아 서로를 위로하고 존중하며 사랑하는 관계, 그런 관계가 결핍된 시대가 지금 이 시대일 수도 있다. 아마 그렇기 때문에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저 뜬금없는 '추앙'이라는 말에 공감하는 것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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