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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우 Jun 02. 2022

서로의 약점을 모르는 관계

우리가 타인의 약점에 관해 잘 모른다면, 대개 그와 그만큼 가깝지 않다는 뜻이 아닐까 싶다. 내가 아는 것이 상대의 친절과 배려, 균형잡인 매너와 현명함 밖에 없다면, 그는 내게 그 이상을 보여주지 않은 것이다. 그저 그 정도 선에서 관계 맺기를 원하는, 적당한 거리를 제안한 것이다. 그와 나는 충분히 가깝지 않은 것이다. 

달리 말하면, 누군가에게 일종의 불편함들을 느끼기 시작하고, 그의 약점을 알아가고, 동시에 서로의 선을 고민하는 일들이 생긴다는 건, 그와 가까운 사람이 되었다는 뜻도 될 것이다. 그런데 관계라는 건 그렇게 가까워질 때야 말로 가장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끊어지기도 한다. 왜냐하면 그 지점부터 이제 서로의 보다 가감없는 모습들을 서로 감당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일들이 생기기 때문이다. 

관계에도 아마 비교적 쉬운 관계와 어려운 관계가 있을 것이다. 비교적 쉬운 관계는 내가 정해둔 선 이상으로 상대가 들어오지 않고, 상대가 그은 선 안쪽으로 나도 들어가지 않는 관계다. 서로 칭찬하고, 좋은 얘기 해주고, 배려하고, 조심하면서 적당한 거리를 두는 관계다. 반대로, 어려운 관계는 이제 그 선을 넘어서는 친밀함을 나누기 시작하는 관계다. 이제 당신도 내 삶의 일부가 되고, 나도 당신 삶의 일부가 된다. 이때가 되면 관계에서 크게 상처를 받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관계에서 삶의 아주 깊은 무엇을 얻는 지점이기도 하다. 

흔히 어릴 적 만난 친구들이 진정한 관계이고, 사회로 나가면 그런 사이는 만나기 어렵다고들 한다. 어쨌든 나이가 들어가면, 타인과 나 사이의 적정한 거리라는 걸 알고 지키기 때문일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적당한 거리 속에서, 서로를 지지하거나 윈윈하며 맺어가는 형태의 관계도 충분히 의미가 있고 소중하다고도 생각한다. 분명 그런 관계도 '좋은' 관계일 수 있고, 마냥 '진정하지 않다'고 말할 것까지는 아닐 것이다. 

다만, 살아가면서는 종종 선을 넘는 관계들을 만나게 되고, 그런 관계들을 만나야만 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 또한 한 시절 만나는 사람일지라도, 그 시절 절실하게 선을 넘어 가닿는 그 마음이라는 걸 경험해야만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느끼곤 한다. 그래서 내어놓고, 드러내고, 나를 당신에게 맡기고, 당신이 내게 건네는 신뢰를 받아들이고, 그런 마음을 나누는 믿음이라는 걸 알게 하는 그런 관계를, 시절마다 지녀야 하는 건 아닐까 싶다. 왜 그래야만 하냐고 묻는다면, 잘 모르겠지만, 그냥 그것이 삶 같아서다. 삶이라는 건, 때로는 그게 다인 것 같아서다. 


삶을 돌아볼 때면, 정말이지 마음을 다 내어주듯이 믿었던 어떤 친우들이 떠오르곤 한다. 남자건 여자건, 연상이건 연하건, 그런 것과는 상관 없이 내게 있었던 어느 시절의 '선을 넘는 사람들'이 있었다. 내가 누구와 함게 이 삶이라는 여정을 지나왔는지 묻는다면, 떠오르는 건 바로 그들이다. 멀어지고 이별하고 더 이상 연락하지 않고 다시 보지 않을 사람들도 있지만, 그래도 그들이 만난 일이 내게는 삶이었고, 삶을 산 일이었다. 진심으로 미안해하고, 고마워하고, 빚지고, 선물을 주면서 그들과 살아냈던 그 순간들을 뺀다면, 삶에서 남는 것들은 별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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