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살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먹어야 한다. 세상 모든 생명이 마찬가지지만, 사람은 특별히 더 먹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타인의 마음을 먹어야 한다. 아무래도 인간은 빵만 먹고는 살 수 없다. 하루종일 빵만 먹다 보면, 불안해서 미쳐 버린다. 날씨만 좋으면 잘 자라는 식물과 달리, 인간은 날씨만 좋아서도 곤란하다. 인간에게는 다른 인간이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있어야 한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다른 인간의 시선, 온기, 사랑으로 자란다. 커나가면서 거기에 타자의 인정이 덧붙여진다. 부모가 없으면 불안해하는 어린 아이처럼, 어른도 타인들의 인정이 없으면 불안하다. 타인의 관심으로, 자신이 "가치 있다"는 느낌을 얻지 못하면, 그 "가치 있음"을 매일 수혈받지 못하면, 허기를 느끼고 불안에 떨기 시작하며, 자신이 무가치하다는 느낌 아래 점점 미쳐간다.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에는 역대급 민폐 캐릭터인 황동민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 캐릭터는 20년간의 실패라는, 아무리 드라마 속 등장인물이라지만, 다소 가혹할 정도의 실패와 절실함, 즉 '허기'에 몸부림치는 사람이다. 더군다나 그냥 실패로 살아가는 게 아니라, 매우 적극적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다니는 나머지, 드라마를 보는 모든 사람들이 그 주인공을 좋아할 수 없게 만든다. 차차 나아지긴 하겠지만, 아무튼 처음 몇 화 동안, 이토록 좋아할 만한 여지가 거의 없는 주인공이 그간 드라마에 있었나 싶을 정도다.
내 생각에, 이것은 인물에 대한 "공감이나 연민"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장치는 아닌 것 같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작가는 저 연민하고 싶지 않은 캐릭터, 저 시기질투와 피해의식에 망가져버린 인간이 사실은 저 인물을 향해 혀를 끌끌 차고 있는 나 자신의 일부이기도 하다는 것을 인정시키려고 하는 게 아닐까 싶다. 사실, 맞다. 나도 시기질투하고, 나도 얼마든지 못난 인간이 될 수 있고, 나도 내가 "의절"하고 싶은 그런 인간이기도 하다. 그건 이해와 공감, 연민이라기 보다는, 그냥 인정에 가깝다.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그냥 인정하게 된다. 저게 인간이고, 나이기도 하다는 걸.
그는 작중에서 한 인물에게 "내 인생이 왜 니 마음에 들어야 하는데요."라고 말하는데, 이 말에서 나는 "니"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다. 우리는 누구나 마음에 들고 싶은 "니"가 있다. 그러나 그게 모두는 아니다. 어찌 보면, 자기만의 인생이란 내가 마음에 들고 싶은 "니"를 찾아가는 여정이기도 하다. 내가 딱히 마음에 들고 싶지 않은 "니"들에 저항하면서, 내가 마음에 들고 싶은 "니"를 찾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 "니"를 찾아서, 진짜 "니 마음"에 드는 인간이 되기 시작하면, 비로소 인간은 자기의 삶을 살게 되는 게 아닐까 싶다.
카프카의 <단식광대>에는 '단식'이라는 재주를 부리는 광대가 등장한다. 단식광대는 수십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는 재주로, 최고의 인기를 누린다. 그러나 '단식'의 인기가 시들해지자, 나중에 단식광대는 사람들의 관심을 별반 받지 못하는 인물이 된다. 그런데 그는 마지막에, 죽기 전 대략 이런 고백을 남긴다. "너희들은 나에게 감탄해서는 안 돼. 나는 단식을 해야만 했기 때문이야. 왜냐하면 나는 내 입에 맞는 음식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지."
황동민은 주변 친구들의 영화를 싫어한다. 물론, 좋아하는 영화도 있지만, 주변에 자기 '입맛'에 맞는 인간도, 영화도 거의 없다. 그는 진실하다. 그는 타인들과 의례적인 인정을 나눌 수 없어 실패자로 낙인찍힐수록 더 진실해질 수밖에 없다. 위선도 가질 수 없고, 허영도 가질 수 없다. 그에게 남는 건 점점 더 진실 뿐이다. 어쩌면 실패와 허기, 박탈과 소외는 점점 더 그를 '진실'로 데려간다. 그는 어쩌면 삶에서 보통 사람이라면, 체면 때문에, 사회적 위치 때문에, 인간관계 때문에 도통 실현할 수 없는 진짜 '진실한 무언가'를 실현할지도 모른다. 마치 단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카프카의 단식광대처럼.
* 사진 - 모두가자신의무가치함과싸우고있다 하이라이트 캡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