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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우 Jun 29. 2022

사람을 살게하는 것

Photo by Marten Bjork on Unsplash


예전에는 잘 알지 못했는데, 사람을 살게 하는 것은 자기의 일이 아닐까 싶다. 일이란, 대개 돈벌이의 수단에 불과하고, 가능하면 안하는 것이 좋고, 많이 놀고 쉬는 게 인생의 행복일 것 같지만, 조금 다르게, 나는 일이 사람을 살린다고 믿고 있다. 자신의 일이 있는 사람은, 인생의 크나큰 슬픔이나 좌절, 실패나 고독을 겪더라도, 어쨌든 다시 일어설 수 있고, 또 하루를 살아낼 수 있는 것 같다. 자신의 일, 자신의 역할, 자기를 부르는 어떤 의무가 사람을 다시 생명의 영역으로 불러들인다.


마약이나 알코올 중독에 빠진 사람을 치료하는 일에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그 사람들에게 다시 사회에서 의미있는 자리와 역할을 주고, 사회 속에서 자신의 일과 관계를 갖게 하여 매일을 살아갈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라 한다. 마찬가지로, 도저히 극복할 수 없을 것 같은 인생의 이별이나 좌절, 실패 속에서도, 결국 그 사람을 일으켜 세우는 것은 그 사람의 '갈 곳'이 있다는 사실이 아닐까 싶다. 그래도 나의 쓰임이 있고, 나의 역할이 있고, 나를 부르는 곳으로 매일 다시 일어나 걸어가다보면, 삶은 사람을, 생명을 회복시킨다. 


사실, 인간에게 주어진 일이라는 것 속에는 항상 어떤 관계나 사람이 들어있기 마련이다. 내가 하는 일들은 분명 어느 누군가의 행복이나 삶을 위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식료품을 만들든, 바닥을 쓸든, 냉장고를 배달하든, 책을 출간하든, 영화를 찍든, 사람이 하는 일이란 원래 대부분 타인들의 삶에 작은 선물들을 주는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현대사회는 그런 일의 본질을 제대로 들여다볼 수 없을 정도로, 매우 분업적이고 기계적으로 작동하고 있고, 노동이란 것이 의미있는 선물이라기 보다는 지겨운 작업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러다보니, 일 그 자체가 사람을 살리는 측면에 대해서는 점점 더 알 수 없게 되어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마도, 사람이란 쓰임받지 못하고, 자기 자신의 존재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지 못하고, 자신이 살아있을 이유에 대해 스스로 합리화하지 못하면 살아갈 수 없는 존재가 맞을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자기 삶에 그런 의미를 보다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자기의 일'이라는 것을 가져야만 한다고 믿는다. 내가 어쩔 수 없이 하는 일들에 아무런 의미도 느낄 수 없다면, 나에게 의미를 부여해줄 다른 일을 하나쯤은 가져야만 한다. 나의 존재가치를 알게 하고, 나의 존재가 이 세상에 있어서 다행이라고 느낄 수 있게 해주고, 그로써 매일 나를 일으켜 세워줄 일이 역시 하나쯤 있어야 한다고, 그렇게 믿게 된다. 


소명처럼 자신의 일을 찾아나설 것, 그것은 무엇보다도 자신의 생명을 위한 일일 것이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이어갈 수 있는 일이 있는 사람은 그렇게 쉽게 삶에게 패배하지 않는다. 그러다보면, 결국 자신의 일이 자기 삶을 이끌고 가면서, 삶을 어떤 지평 위에 올려놓는다는 것을 믿게 되는 듯하다. 그래서 달리 말하면, 자신의 일이 없는 것만큼 견디기 힘든 게 없다. 나의 쓰임을 알 수 없고, 내가 쓸모 없는 존재라 느껴지는 것만큼 괴로운 시절이 없다. 그래서 때론 나에게 쓰임을 준 어느 사람들이 은인이 되기도 하고, 쓰임을 인정받는 일이 인생에서 가장 멋진 순간이 되기도 한다. 사람은 쓰이기 위해 태어났고, 그 쓰임이 결국 삶이 되고, 생명이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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