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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우 Jul 13. 2022

변호사 일을 하며 드는 소회


어쩌다 보니, 하고 있는 송무나 자문 업무들이 코인(암호화폐), 개인정보, NFT, 기술이전, 저작권, 특허 등 최신 기술 관련된 것들이 대부분이라, 갑자기 이과생이 된 것 같은 기분도 든다. 문학을 하던 내가 어쩌다 법학을 하고, 이제는 블록체인 등 최신 기술까지 공부하고 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삼십대 이후, 인생이라는 걸 함부로 예측하면 안되겠다 싶은 걸 부쩍 느낀다. 


나름대로는 내가 오래 전의 세계에 갇혀 살지 않고, 계속 새로운 것들을 부지런히 알아가는 인생을 살고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 꼭 몸으로 온 세계를 여행하지 않더라도, 다양한 분야들을 공부해 보는 것도 일종의 여행하는 삶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인간의 기쁨 중에는 앎의 기쁨이라는 게 확실히 있는데, 공부나 여행 모두 그런 기쁨에 기여하는 것 같기도 하다. 


사실, 인생의 모든 경험이라는 건 '뇌'의 경험이기도 하다. 뇌는 본질적으로 게임 속에서 사냥하는 것과 실제로 사냥하는 걸 거의 구분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러니 여행이 본능이었던 유목민 시절처럼, 우리는 온라인 세계도 여행하고, N잡러의 세계도 여행하며,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여행하는 게 '뇌의 입장'에서는 진짜 여행일 수도 있는 셈이다. 


생각해보면, 삶이 온통 여행인 것 같다. 아이와 함께하는 삶은 그 자체로 새로운 영토로의 여행 같다. 더불어 아이에게 새로운 경험을 시켜주겠다고 주말마다 어디 공원이나 바닷가라도 돌아다니기 바쁘다 보니, 아내랑은 그런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아이가 없었다면 경험하지 않았을 일이 이렇게 많다니. 아이가 없었다면 없었을 세계라니." 삶이란 어쩌면 그렇게 '경험들 그 자체'인지도 모르겠다. 


과거에는 내가 문학이나 철학의 한 분야에 깊이 파고들면서, 인생 내내 마치 헤르만 헤세 '유리알 유희' 속 예술가들처럼 사는 게 꿈인 때도 있었다. 어떤 성곽 속에서 보호 받으면서 그저 어제 했던 걸 오늘 또 하고, 그렇게 한 분야의 영원한 장인이나 수도승처럼 사는 게 삶의 이상 같은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는, 그런 이상이 견디기 힘들어졌고, 저 경험들 속에서, 세상 속으로 여행하듯 몸을 던지고 싶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정말 그런 삶을 살고 있다. 이 부단한 여행이 끝날 즈음, 아마 삶도 거의 저물어가지 않을까, 하는 예감을 하면서 오늘도 하루하루 살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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