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서는 궁극적인 정답을 얻을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사실, 그럴 수도 없고, 그래서는 안된다는 생각도 든다. 그저 알 수 있는 건 한정적인 진실들 뿐이고, 어느 시절의 정답들일 뿐이다. 모든 인생에 들어맞는 단 하나의 태도, 모든 시절에 정답이 될 수 있는 진리는 없을 것이다. 그저 어느 삶, 어느 사람, 어느 시절에 맞는 진실을 매번 찾는 여정이 삶이라는 생각이 든다.
대개 우리가 집요하게 좇고, 그래서 도달했을 때 세상 최고의 기쁨을 느끼는 것들은 우리의 결핍과 관련되어 있다. 어린 시절, 풍족하게 자라지 못한 사람은 집요하게 부를 쫓고, 그래서 실제로 부를 얻었을 때 세상을 다 가진 듯한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자신의 결핍이 비로소 채워졌다는 느낌 아래, 쇼핑하고, 여행하고, 맛있는 걸 먹으며 인생의 소원을 성취했다고 믿을 수 있다. 그건 그 사람이 한 시절 좇은 진실이 맞을 것이다.
그런 기쁨조차 본질적인 것이 아니고 영원한 것이 아니라고 한들, 그것은 그것대로 그 사람에겐 의미있는 '채움'일 것이다. 그러고 나서, 또다른 허무의 시절이 온다고 한들, 그 시절에는 또 그 시절의 결핍을 마주하고 채우면 될 일이다. 결핍들은 시절들마다 달리 찾아오고, 우리는 부지런히 그것들을 채워나가면 된다. 인생의 궁극적인 결핍은 채울 수 없고, 그래서 궁극적인 정답도 없다. 인생이란, 늘 임기응변에 가깝다.
그러니까 삶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다른 무엇보다도 한 시절, 이 시절, 오늘의 시절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하는 듯하다. 이 시절이 완벽해서, 완벽한 정답의 시절이어서 사랑하는 게 아니다. 그저 이 시절 만큼은 간신히 사랑할 수 있는 조건들을 갖추었기 때문에, 잠시 삶을 사랑할 기회를 얻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 사랑하는 일, 내 안의 결핍을 채운 잠깐의 풍요, 이를테면, 음식이든, 집이든, 여행이든, 신앙이든, 그 무언가가 잠시 이 삶을 버티게 해준다.
그러고 나서 오는 새로운 시절에는 또 그 시절에 맞는 정답이 필요하다. 그래서 삶이란, 매번 정답이라 느꼈던 것들을 폐기하는 일이다. 그리고 늘 임시적인 해답을 좇는 일이다. 그렇지 않고, 궁극적인 해답이나 채움만을 꿈꾸다 보면, 오히려 사랑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던 세상의 모든 시절이 그렇게 흘러가버리고 말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너무 인생의 궁극적인 정답을 찾으려 하기 보다는, 그저 자기의 삶을 따라나서며 매번의 여정을 사랑할 필요가 있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