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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우 Jul 08. 2022

내가 잘못 산다고 말하는 세상에게

우리 시대의 특성 하나를 꼽자면, 온 세상으로부터 '너는 잘못 살고 있어.'라는 이야기가 쏟아진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당장 사회 전반에 재테크 열풍이 불던 때만 떠올리더라도, 온 사방에서 지금 코인이나 부동산에 탑승하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거라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렸다. 실제로 그런 열풍에 혜택을 입은 사람이 적지 않겠지만, 그로 인해 크고 작은 실패를 겪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지나치게 '적게' 들렸다. 그러나 열풍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적지 않은 폐허가 형성되기도 했다. 당장 나도 수십억 원대 코인 사기와 관련된 사건을 맡기도 했다.      


'잘못 살고 있다.'라는 강박은 사소한 일상에서도 경험된다. 하루에 2000번 이상 만진다고 하는 스마트폰을 켜면, 온 세상 사람들은 나 빼고 다 일생의 경험들을 누리고 있는 것 같다. 아름다운 카페, 호텔, 레스토랑, 여행지에서 타인들은 천상의 행복을 누리고 있는 것처럼 전시되고, 나만이 그런 경험으로부터 소외되어 있는 것만 같다. 그런 소외감을 극복하려면, 나도 서둘러 '잘못 살지 않는 길', 그러니까 그런 유행에 합류하며 '플렉스'해야 할 것 같은 초조함을 느낀다. 그들이 떠나는 곳으로 떠나지 않는 건 잘못 사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내 형편에 맞게 중저가 자동차를 구매하거나, 전세 살이를 하면서 인생을 차분하게 살아보려는 의지도 전방위적으로 공격받는다. 자동차 구매의 조언을 얻기 위해 인터넷에 질문이라도 올리면, 고급 외제차 외에는 모두 살만한 가치가 없다는 식의 댓글들이 산더미처럼 달린다. 자동차도 요즘에는 '승차감'보다 '하차감'이 중요하다면서, 내릴 때 타인의 시선에서 오는 우월감을 누리기 위해 고급차를 사야 한다는 부추김도 적지 않다. 명품백을 사라, 고급 외제차를 사라, 전세로 들어갈 바에야 집을 사라, 그런 말들이 사방에서 쏟아지고, 실시간으로 전시된다.     


더 긴 인생의 차원도 다르지 않다. 어떤 직장이 신의 직장이고, 어떤 직업이 좋은 직업인지 서열 매겨지면서 애초에 내가 어떤 일을 진정으로 하고 싶은지는 부차적인 문제가 된다. 결혼을 몇 살에 해야하고, 아이는 몇을 낳아야 하며, 육아나 아이 교육은 어떻게 해야하는지 모든 것에서 강요에 가까운 기준들이 쏟아진다. 세상은 늘 '제대로 사는 기준'을 하나부터 열까지 정답처럼 정해놓고, SNS, 뒷담화,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통해 끊임없이 속삭인다. 그런 타인들의 잣대가 범람하는 시대에는, 나의 진정한 선택이 무엇인지조차 알기 어렵다.      

이런 시대는 '비난의 일상화'로 인해 더 추동력을 얻는다. 무엇이 자기에게 옳은지를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타인들의 삶이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소리치는 이야기들이 주목을 얻는다. 유튜브에만 하더라도 '이렇게 살면 망합니다'류의 콘텐츠들이 범람하고,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타인을 비난하는 댓글이 엄청나게 달리기도 한다. 독설의 유행은 꺼질 줄 모르고, 저격은 가장 흥행하기 좋은 콘텐츠가 되었다. 유명인들이 한 사소한 실수들에 벌떼같이 몰려 들어서 그를 비난하고 끌어내는 일도 매일같이 일어난다. 이 시대 생존법은 어떻게 하면 '비난받지 않느냐'가 되었다.      


그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기존에 우리 사회가 지독한 집단주의 사회였다는 점도 한 몫할 것이다. 집단주의 사회가 나쁜 면만 있는 건 아니겠지만, 특히 우리 사회에서 부정적으로 작동한 점은 인생의 정답, 가치, 서열 같은 것들을 일률적으로 정해둔 다음, 그런 집단적 기준에 따라 인간들을 단죄해왔다는 점이다. 잘한 것과 못한 것, 잘산 삶과 못산 삶을 획일적인 기준으로 평가하고 그에 따라 계급을 나누어 왔던 것이다. 그런 사회의 잔재가 여전히 남아 있으면서도, 개개인의 경쟁이 심화되고 각자도생이 자리 잡으면서 인생은 '만인에 대한 투쟁이자 방어'가 되었다.      


이 책에는 그런 시대에서 살아가는 일에 대한 이야기들을 실었다. 타인들을 구경하면서 비난하거나 혐오하고, 시기와 질투심, 상대적 박탈감과 소외감이 끊임없이 조장되고, 닮고 싶은 선례 보다는 반면교사만이 넘쳐나는 시대에 대해 묘사하고자 했다. 그러나 그런 시대의 묘사에만 그치지 않고, 이런 시대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태도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보고자 했다. 특히, 타인과 어떻게 온전히 관계 맺으며 나 자신의 삶을 살아낼 수 있을지, 허구 같은 담론에 기대기 보다는 나 자신의 경험에서부터 시작한 이야기들을 담담히 기록해보고자 했다. 이처럼 사회에 대한 묘사 뿐만 아니라 살아가는 태도에 대해 깊이 이야기하고자 한 점이 전작인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와 차이점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절망의 시대라 불러야할지도 모르고, 미쳐버린 세상이라고 해야할지도 모르는 그런 사회에서 살아간다고 느낄 때가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보면, 모든 시대에는 시대마다의 절망이 있으며, 모든 인생에는 어딘지 미친 구석이 있기도 하다. 결국 우리는 그런 시대나 사회를 자기만의 인생이라는 배를 타고 통과해야만 한다. 그럴 때, 자신을 지켜주는 건 그 모든 것들을 대하는 자기만의 기준과 태도일 거라 생각한다. 궁극적으로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그런 태도에 대한 것이다.      


살아오면서, 나 또한 늘 세상이 나에게 '너는 잘못 살고 있어.'라고 속삭이는 말들을 들어왔다. 때로 그런 목소리는 내 내면의 목소리였고, 때로 누군가가 직접 내게 건네는 목소리이기도 했다. 그런 목소리가 때로는 옳을 때도 있었지만, 우리 시대를 건너기 위해서는 그 목소리에 굴복하기 보다는 싸워야 할 일이 여전히 더 많다고 믿는다. 이 책이 그런 당신의 싸움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길 바라본다. 이 책을 다음과 같은 말로 시작하고 싶다.      


"힘겨운 싸움을 하는 모든 이들에게 친절하라." (영화, <원더> 중)


*


올해 첫 책을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이후 2년 만의 후속작 <내가 잘못 산다고 말하는 세상에게>입니다. ‘남부럽지 않은 기준’을 정답인 양 정해놓고 시기와 질투심, 상대적 박탈감과 소외감을 끊임없이 조장하는 시대에 관한 이야기들을 차곡차곡 모았습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제대로 사는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SNS,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통해 끊임없이 속삭이는 시대, 그런 타인들의 잣대가 알게 모르게 개인의 강박이 되는 시대에 개인으로 살아남기에 관하여 나름대로의 삶의 태도를 한땀 한땀 적어내보고자 애썼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이 책이 이 세상과 시대를 견뎌내는 데 작은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 시대를 건너가면서 하게 되는 수많은 고민들이 저 자신만의 고민이 아니라, 당신의 고민이기도 하다는 것, 그렇게 서로 고민의 연대, 또는 공감의 연대를 만들어 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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