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지우 Aug 23. 2022

'심심한 사과'로 세상이 떠들썩하다(feat.문해력)

Photo by Louis Hansel on Unsplash


'심심한 사과'로 세상이 떠들썩하다. 사태의 시작은, 한 업체에서 '심심한 사과' 말씀을 드린다는 글을 올렸는데, 이에 네티즌들이 '뭐가 심심하냐'라고 반발하면서 일어났다. 당연히 심심한 사과의 뜻은 지루한 사과는 아니고, 마음 깊이 사과한다는 뜻이다. 이로 인해, 대통령까지 '문해력'을 거론하고 나섰다는데, 개인적으로 이 사태의 핵심은 '어휘력' 보다는 '비난' 자체라고 느낀다.


기존에도 계속 일련의 '한자어'를 놓고, 이를 모르는 세대를 탓하는 일들은 있어왔다. 그러나 나는 일상적으로 쓰지 않는 한자어를 모르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실제로 나도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쓰인 책들을 읽다보면, 모르는 한자어들 투성이다. 언어란 시대에 따라 계속 달라진다. 반대로 보면, 기성 세대는 새로운 세대들이 쓰는 신조어나 외래어는 거의 모르기도 한다. 문제는, 특정 어휘를 알고 모르고가 아니라, 인간 대 인간의 소통에 대한 태도 자체의 변질이다. 


업체가 사과 말씀을 전하면서, 심심하니까 대충 사과한다고 말할 리가 없다. 사회적 관계에 대한 최소한의 신뢰가 존재한다면, 어떤 어휘를 쓰든 간에 그것이 '진심어린 사과'를 하는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다른 경우도 마찬가지인 것이, 내가 모르는 단어를 누군가 쓰더라도, 특정 맥락 안에서 어련히 적절한 이야기를 했겠거니, 판단할 수 있다. 문제는 그런 소통에서의 신뢰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소통에서 신뢰가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 그러면 모든 단어 하나하나가 '악의적 오독'의 전쟁이 된다. 당신의 마음을 믿을 수 없으므로, 믿을 수 있는 건 눈 앞에 있는 단어 하나하나 밖에 없다. 우리 시대의 거대한 현상 중 하나가 바로 '말실수 기다리기'다. 연예인이든 정치인이든 사업가든 누구든 단어 하나 실수하기를 기다려서, 득달같이 달려들어 저격하고 악플다는 현상은 이제 매우 보편적이 되었다. 타인의 마음을 믿지 못하므로, 믿을 건 단어 밖에 남지 않은 것이다.


'직조' 같은 어려운 단어를 쓰는 평론가의 마음은 믿을 수 없다. 그는 진짜 평론을 하는 게 아니라 잘난 척하려는 마음으로 그런 어휘를 쓰는 것이다. '심심한 사과' 같은 단어를 쓰는 것은 드디어 사과하기 싫은 마음이 폭로된 '말실수'의 순간이다. 당신들의 진심 같은 건 모두 믿을 수 없다. 진실은 당신들이 쓰는 '이상한 어휘'에 있다. 혹은 정신분석학적인 '말실수'의 순간에 있다. 모든 건 허위이고 거짓이고 위장이므로, 우리는 당신의 팩트를 당신의 어휘에서 발견한다. 바야흐로 정신분석가들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튜브 등에 흥행하는 '저격 문화'를 보면, 우리 사회가 얼마나 타인들의 어휘에 집착하는지 더 알 수 있다. 한 사람이 해왔던 모든 말들을 수집해서 앞뒤가 맞는지 아닌지 분석한다. 나아가 어떤 말실수를 포착하는 순간, 드이어 비열한 '진심'이 나타났다면서 악마화하기 시작한다. 그 어떤 사람도 결코 완벽한 언술행위를 할 수 없다는 사실은 무시된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악마화'를 일상화하는 세상이 그렇게 착실히 만들어진다.


예전에도 나는 문해력의 위기란 "나와 타자가 속한 맥락을 포괄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의 부재라고 쓴 적이 있다. 이런 위기는 바로 타인을 마음대로 재단하고, 비난하고, 저격하는 데 신이 난 문화와 무관치 않다고 이야기했다(<내가 잘못산다고 말하는 세상에게>에도 이 글이 실려 있다). 문제는 어휘가 아니라 맥락이다. 그리고 이 나와 당신 사이의 맥락에 대한 이해는, 당신에 대한 신뢰, 나와 당신이 속해 있는 총체적 의미에서의 '사회'에 대한 신뢰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이 신뢰가 무너진 시대에는, 대화는 없고 어휘만 남는다. 


악의적 오독의 시대, 우리는 점점 더 결별 위기의 커플처럼 서로의 말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당신의 마음을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쩌면 우리는 최수연이 아닌 권민우 (feat.우영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